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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 ․ 남세담 등과 대마도에 조관을 보내는 일에 대해 논쟁하다.
경연에 나아갔다. 강하기를 마치자, 지평 강형(姜詗)이 아뢰기를, ……
강형이 아뢰기를,
“옛날 왜인이 우리 백성을 죽였는데 그 때 장차 고태필(高台弼)을 보내어 유시하려고 하였으나 적국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서계로 통지하였을 뿐입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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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수원에 지나면서 독성산성에 올라 승지 황경원에게 임진왜란 때의 일을 상고하다.
임금이 수원을 지나면서 독성산성에 올라 해문을 바라보면서 승지 황경원(黃景源)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해문에서 등주(登州)까지의 거리는 몇 리나 되는가?”
하니, 황경원이 대답하기를,
“동강에서 등주까지는 3,958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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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와 최영이 군사를 징발하여 덕적도 등의 왜적을 방비하다.
신우(辛禑) 원년(1375) 을묘 9월, 왜적의 배가 덕적도(德積島)·자연도(紫燕島) 두 섬에 많이 모이니, 우왕(禑王)은 여러 도의 군사를 징발하여 태조와 판삼사사(判三司事) 최영(崔瑩)으로 이를 거느리게 하고, 동강(東江)과 서강(西江)에 군대의 위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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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와 최영이 해풍군에서 왜를 물리치다.
신우(辛禑) 4년(1378) 무오 4월, 왜적의 배가 착량(窄梁)에 많이 모여 승천부(昇天府)승천부(昇天府)경기도 강화로 들어와서 장차 서울을 침구하겠다고 소문을 내니, 중앙과 지방이 크게 진동하였다. 병위(兵衛)를 대궐 문에 배치하여 적군이 이르기를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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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포왜사 인당을 옥에 가두다.
포왜사(捕倭使) 인당(印璫)이 금군(禁軍)과 동강 서강 및 교동의 수수(水手) 천명을 거느리고 왜적을 방어하면서 머무적거리고 나아가지 않았으므로 왕이 인당을 옥에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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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책량까지 침입하였으므로 여러 영병을 동원하여 동강과 서강으로 가게 하다.
…… 왜적이 책량(窄梁)까지 침입하였으므로 추밀원 부사 이춘부(李春富)를 방어사로 임명하고 곧 여러 영의 군사들[領兵]을 동원하여 동강과 서강으로 가게 하였으며 또 소윤 정지상(鄭之祥)을 찰방으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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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리 유연에게 명하여 동강을 지키게 하다.
왜적이 가까운 섬에 있었으므로 평리(評理) 유연(柳淵)에게 명령하여 나가서 동강(東江)을 지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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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양천을 침범하고 한양에 들어와서 수백리가 소란하였고 서울이 크게 소동하다.
왜적의 배가 동강과 서강에 모이어 양천(陽川)을 침범하고 드디어 한양에 들어와서 민가에 불을 놓고 백성을 살해 포로하였으므로 그곳 수백리가 소란하였고 서울이 크게 소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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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용성 등 10여 현을 침공하니 유탁을 경기도통사로 삼고 방리 사람들로 군대를 조직하다.
왜구가 용성(龍城) 등 10여 현을 침공하니, 유탁(柳濯)을 경기도통사(京畿都統使)로 삼고 방리 사람들을 결속하여 군대를 조직하였는데 대호(大戶)는 두 명, 소호(小戶)는 한 명씩 내게 하였다. 이를 거느리고 동강 서강에 가서 주둔케 하며 또 백관으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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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가 위급하게 되어 여러 원수를 동강과 서강에 파견하다.
강화에서 봉화를 낮에 계속 올리고 수도가 위급하게 되었으므로 여러 원수를 동강과 서강에 파견하여 각각 주둔하게 하고 용사들을 거두어 모아 매 개인에게 피륙 50필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