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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돈녕부사로 치사한 이지의 졸기.
영돈녕부사로 치사한 이지(李枝)가 졸하였는데, 이지는 우리 태조의 종제이다. 이지는 나이 8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숙부인 익양군(益陽君) 왕기(王琦)의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태조께서 잠저로 불러와서 두고 무양하기를 심히 두터이 하여 상시 휘하에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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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이 은을 왜인에게 팔려든 이지 부자를 논죄하다.
처음에 은공(銀工) 이덕중(李德中)이 은을 왜인에게 팔려고, 왜관의 방지기[房守]인 군자(君子)에게 모의하였으므로, 군자가 비밀히 왜에게 통지하여 명주[紬]와 포목[布]을 받아 가지고 덕중의 집으로 갔더니, 마침 덕중이 있지 아니하고 그 아비인 이지(李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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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토잔에 험조, 죽령에 토성이나 목책, 공주에 포루 등의 설치를 건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조령(鳥嶺)·죽령(竹嶺)·토잔(兎棧) 등의 지역은 실로 천험의 요새가 되는 곳입니다. 지금 조령에는 이미 관방(關防)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만을 의지해 견고함을 삼고자 한다면 그 형세가 너무 단약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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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 이조 ․ 지변사 당상이 박언신의 추문을 아뢰자 윤허하다.
정부·이조·지변사 당상이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지금 경차관이 아뢴 것을 보니, 절영도(絶影島)에 왜변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하여 사간인 변우성(卞友誠) 등 13인을 3차 추문하니 모두 변명하였다. 우명달(禹明達)이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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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부에서 부산첨사 이지의 부임을 재촉하다.
헌부가 권소(權劭)와 이제남(李弟男)의 일을 아뢰었다. 또 아뢰기를,
“요즈음에 제포의 왜노들이 성을 넘어가 살인하기에까지 이르렀으니 변방의 흔단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장이 된 자는 더욱 경계를 하고 단속해야 하는데도 변이 생긴 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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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방비를 위해 삼남 도찰리사와 각도 조전절제사 등을 임명하다.
또 상의중추원사(尙議中樞院事) 이지(李至)로 충청·전라· 경상도 도찰리사(都察理使)를 삼고, 전 상의중추원사 이천우(李天祐)로 강원도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를 삼고, 전 이성도 병마절제사(泥城道兵馬節制使) 이귀철(李龜鐵)로 충청·경상도 조전 절제사를 삼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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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온 등 10인을 서울로 보내고, 나머지를 엄습하자 도망가다.
나가온(羅可溫)이 뵙기를 청하니 관찰사가 허락하였다. 나가온이 그의 무리 80인을 거느리고 밀양부(密陽府)에 이르니 관찰사 이지(李至)가 술과 음식을 먹이고, 나가온 등 10인은 서울로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배로 돌려보내었다. 도안무사(都安撫使) 박자안(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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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울주사 이은을 대마도까지 따라가 살려낸 아전 2사람의 향역을 면제하다.
울주(蔚州)의 아전 이도(李陶)·박언(朴焉)의 향역(鄕役)을 면제하였다. 처음에 왜적이 지울주사(知蔚州事) 이은(李殷)을 잡아가매, 도(陶)와 언(焉)이 따라가서 대마도에 이르러 살려내었었다. 경상도 도관찰사(都觀察使) 이지(李至)가 진달하여 청하니 윤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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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가 군사의 정원을 두어 왜를 방비토록 상소하다.
임금이 양부(兩府)에서 올린 글을 열람하니, 모두 토목의 역사를 빨리 그만두고 여관(女官)과 환관(宦官)의 관직을 도태 제거할 것이며,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정사를 청단하고, 군자를 친근히 하고 소인을 물리치는 것으로써 말하였는데,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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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창궐하자 박자안 등을 지휘관으로 삼아 출병시키다.
이지(李枝)로 순녕군(順寧君)을 삼고, 좌군도총제(左軍都摠制) 박자안(朴子安)으로 경기·충청·전라도 수군도체찰사(水軍都體察使)를 삼고, 풍천군(豊川君) 심귀령(沈龜齡)·우군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유습(柳濕)·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김만수(金萬壽)로 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