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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함락된 진주성 싸움의 자세한 경과.
당초에 적추(賊酋)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제추의 군대를 합치면 30만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자는 7~8만 명이라고 하였다. 왜적이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려 할 때 총병(總兵) 유정(劉綎)은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과 함께 대구(大丘)에 있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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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돌아와 이여송, 왕자, 진휼, 정릉 개장, 이융의 일 등을 아뢰다.
우부승지 구성(具宬)이 서울에서 돌아와 예하니, 상이 인견하였다. 구성이 아뢰기를,
“처음 명을 받았을 때 속히 대병을 따라가라는 게첩을 가지고 가다가 중도에서 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독(提督)이 17일 용인(龍仁)까지 왔다가 적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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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관 유대기가 진주성의 함략 경위, 적도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다.
선전관 유대기(兪大祺)가 치계하였다.【이 달 16일에 진주(晋州)에 있으면서 한 것이다.】
“신이 진주에 도착하여 성이 함락된 경위와 적도의 거류 등에 관한 일을 추문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6월 21일 이른 아침에 왜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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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남쪽의 군량 공급 사정과 대책, 유희선 처형 사실을 보고하다.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이【8월 22일】치계하기를,
“이번에 독운어사(督運御史) 윤경립(尹敬立)의 첩정을 보건대 ‘유총병(劉總兵)과 오유격(吳遊擊)의 두 군대가 모두 상주(尙州)에 왔는데 오래 주둔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상주에는 군량이 이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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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를 대비한 세성의 수축을 정지하고 먼저 김제군의 벽골제를 쌓게 하다.
명하여 김제군(金堤郡) 벽골제(碧骨堤)를 쌓았다. 전라도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 박습(朴習)이 아뢰었다.
“성곽은 봉수(封守)를 견고히 하고 외모(外侮)를 막는 것이고, 제방은 수택을 저축하고 관개를 통하게 하는 것이니, 실로 환난에 대비하고 가뭄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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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현이 왜구침입에 대비책을 조목별로 아뢰었으나 시행되지 못하다.
유정현이 상소하여, 일을 의논하여 이르기를,
“그윽히 생각하건대, 평화한 때에도 난을 잊지 않는 것은, 나라 보전하는 좋은 방책이요, 변에 응하여 적을 막아내는 것은 지금의 급무이라, 신이 명을 받은 이래로 밤낮으로 제어하는 법을 생각하고, 겨우 한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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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해 ․ 유성룡 등과 군량 ․ 무기 ․ 수성책 등에 대해 의논하다.
사시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영돈녕 이산해(李山海),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판부사 윤두수(尹斗壽), 좌의정 김응남(金應南), 지사 정탁(鄭琢),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 호조판서 김수(金睟), 병조판서 이덕형(李德馨), 우참찬 신잡(申磼), 첨지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