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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주의 궁내대랑이 글을 올리다.
일기주(一岐州)의 궁내대랑(宮內大郞)이 〈글을 올리기를〉,
“삼가 조선국 집정각하(執政閣下)에게 받들어 아룁니다. 삼가 존체가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비록 본국의 생민을 위하여 귀국의 은택을 입고 있지마는 지금 구주가 귀국의 은의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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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도사에 자문을 보내어 이예가 대마도에서 데리고 나온 절강사람 서성에 대해 말하다.
사역원주부(司譯院注簿) 김유례(金有禮)를 보내어 요동도사(遼東都司)에 이자하기를,
“의정부에서 장계하기를, ‘정통(正統) 8년 6월 초1일에, 본국의 제주(濟州) 관선(官船) 한 척이 서여서도(西餘鼠島)에 이르러 정박하고 있는 사이에, 홀연히 왜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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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군 윤인보가 대마도에 은전을 베풀고 일본국왕에게 회례하자고 상서하였다.
상호군(上護軍) 윤인보(尹仁甫)가 글을 올리기를,
“신(臣)이 사신이 되어 일찍이 대마도(對馬島)에 이르니 추장(酋長) 종정성(宗貞盛)과 그 관할 구역의 백성들이 모두 말하기를, ‘의식은 오로지 임금의 은덕을 입게 되었으니, 몸은 일본 땅에 있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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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사가 휘덕전에 진향과 장경을 청하다.
선위사(宣慰使) 강맹경(姜孟卿)이 보고하기를,
“일본국 사신이 이미 내이포(乃而浦)에 이르렀는데, 휘덕전(輝德殿)에 진향(進香)하는 것과 장경(藏經)을 청하는 것으로 왔습니다.”
하였다. 그 일본국사의 글에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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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에게 답서를 보내다.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 경릉(景楞) 등이 대궐에 나와서 하직하니, 그들을 접대하도록 명령하였다. 그 답서는 이러하였다.
“조선국 고애자(孤哀子) 이향(李珦)은 일본국왕(日本國王)에게 복서합니다. 폐방이 귀국과 더불어 대대로 인국의 우호를 돈독히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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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 상금복의 사자 도안이 방물을 바치다.
유구국 중산왕(中山王) 상금복(尙金福)의 사자 도안(道安)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그가 가지고 온 자문은 이러하였다.
“복마령(卜麻寧) 등이 고한 것에 의거하면, ‘조선국 인민이 근년에 바닷가를 행선하다 태풍을 만나서 바다 위에서 표류하다가 일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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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판예조사 강맹경 등이 왜호군 등구랑에게 구주의 토지 ․ 부락에 관하여 묻다.
겸판예조사(兼判禮曹事) 강맹경(姜孟卿)·참판(參判) 하위지(河緯地)·참의(參議) 홍윤성(洪允成) 등이 왜호군(倭護軍) 등구랑(藤九郞)을 접견하고 말하기를,
“우리들이 모두 본조에 새로 취임하여 구주(九州)의 토지의 대소 및 부락의 수효를 알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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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주 태수 종성직이 진성행 등을 보내 토물을 바치다.
일본국 대마주태수(對馬州太守) 종성직(宗成職)이 특별히 진성행(秦盛幸) 등 6인을 보내 와서 토물을 바치었다. 그 글에 이르기를,
“옛 시대에서부터 아버지 종정성(宗貞盛)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대마주의 적이 대명국에 이르러 바닷가를 침범하여 곳곳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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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왕과 이천도왕 하차가 사신을 보내 ≪대장경≫과 재화를 보내주길 요청하다.
일본국왕이 영홍수좌(榮弘首座) 등을 보내어서 내빙하고, 이천도왕(夷千島王) 하차(遐叉)가 궁내경(宮內卿) 등을 보내 와서 토물을 바쳤다. 일본국의 서계에 이르기를,
“일본국왕 원의정(源義政)은 조선국왕 전하께 삼가 회답을 올립니다. 두 나라가 천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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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다다량정홍이 중 처감을 보내 토물과 서계를 바치다.
일본국 대내좌경조윤중대부겸방장풍축주태수(大內左京兆尹中大夫兼防長豊筑州太守) 다다량정홍(多多良政弘)이 중 청감(淸鑑) 등을 보내어 와서 토물을 바쳤다. 그 서계에 이르기를,
“조선국 예조대인 족하께 올립니다. 무술년 가을에 하사하신 ≪대장경(大藏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