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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27년 (1594) 8월
사헌부에서 항복한 왜인이 난동을 부리는 일을 아뢰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항복하는 왜인의 일이 매우 염려됩니다. 올라올 즈음에 음식 공급이 조금만 마음에 맞지 않으면 발광하고 작난하여 조금도 두려워하고 꺼리는 태도가 없습니다. 혹은 그들을 압령하는 사람을 묶어놓고 무수히 구타하기도 하고, 혹은 각 고을의 군관이나 색리들을 형틀에 묶어놓고 곤장으로 치기도 하고, 혹은 민간에 들어가서 소나 말이나 재물 등을 약탈하기를 도적질을 할 때와 같이 합니다. 이에 본고을에서...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 선조 27년 (1594) 6월
평안도 독운어사 남이공과 의주목사 김신원을 치죄하다.
군기시(軍器寺)가 아뢰기를, “근일에 체모가 사라져 조정의 위신이 날로 가벼워집니다. 본시의 직장 강홍(姜洪)은 황제가 준 군기를 운반하는 일로 계하를 받아 차송되었습니다. 명위는 비록 낮지만 실은 곧 조정이 차견한 사람인데, 평안도 독운어사(督運御史) 남이공(南以恭)이 한 수령의 첩보에 따라 제 마음대로 수금하였고, 의주목사 김신원(金信元)도 아예 보고도 하지 않고 감히 멋대로 경관을 가두었으니, 이러한 사체...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명종실록 › 명종 18년 (1563)
간원에서 탐욕스러운 경상좌도 병사 이원우의 의망이 부당함을 청하다.
간원이 아뢰기를, “경상좌도 병사 이원우(李元祐)【이기(李芑)의 아들이다.】는 본래 거칠고 사나운 사람인데다가 탐욕스러워 가는 곳마다 멋대로 방자하게 굴며 오직 자신을 살찌우는 데에만 힘썼으므로 그가 부임하는 곳치고 피폐되지 않는 곳이 없어서 공론에 오르내려 드러나게 무거운 공박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변방의 수비와 구적의 방어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해조에서는 이 사람이 죄를 지은 지 얼...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영조실록 › 영조 20년 (1744)
영의정이 동래의 전우장에 대한 조사를 늦게 등보한 동래부사 김한철의 처단을 복주하다.
대신과 비국당상을 인견하였다. ‘동래의 전우장(田雨章)을 조사하라는 사건에 대하여 동래부사 김한철(金漢喆)이 영문에 보고하지 않고 직접 자신이 처단하였다는 것을 봉계한 뒤에 늦게서야 비로소 등보하였으니, 변신이 제멋대로 한 것은 변방의 사정을 엄하게 하고 체통을 중하게 여기는 도리가 아닙니다. 또 그 장계의 계본에 혹은 「잔열하다.」 라고 일컫기도 하고, 혹은 「어리석고 굼뜨다.」 라고 일컬으면서 억지로 그 등급을 나누고자 하였으니, 마땅...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명종실록 › 명종 3년 (1548)
조강에서 헌납 이치가 기강이 해이해지고 작상이 분수에 벗어났다고 하다.
상이 조강에 나아갔다. 헌납 이치(李致)가 아뢰었다. “요즘 기강이 해이하고 작상(爵賞)이 분수에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습니다. 지난번 이기(李芑)가 오랫동안 권력을 쥐고 관작을 제멋대로 주었으며, 또 그 자신이 무직을 많이 거쳤고 그 아들 이원우(李元祐)가 무과 출신인 까닭에 무반의 사람들이 그 집에 따라 붙고 있습니다. 지난번 왜노와 관계를 단절한 일로 인하여 무관을 양성해야 한다는 핑계로 당...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명종실록 › 명종 10년 (1555)
사은사 홍담이 왜구에 관해 장계하다.
사은사(謝恩使) 홍담(洪曇)의 장계에, “…… 또 ‘남방의 소주(蘇州)·송강(松江) 소속인 상해(上海)·가정(嘉定) 등의 고을과 강동(江東) 지방에는 왜놈들의 도적질이 해마다 그치지 않아, 사람들을 죽이고 가옥을 불태우고 공장(工匠)들을 잡아가며 목책을 뽑아다가 곳집을 덮고 판자를 잘라다가 배를 만들며 돼지를 잡고 술을 빚어 먹고 마시며 조금도 기탄함이 없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에는 더욱 심하여 조정에서는 산동(山東)·절강(浙江)...
한일관계사DB › 조선왕조실록 › 명종실록 › 명종 10년 (1555)
양사에서 색리를 추징하라는 명을 거두길 청하다.
양사(兩司)가 아뢰기를, “왕자(王者)가 장수를 임명하여 부월(斧鉞)을 내리는 것은 곤외의 일을 일임하는 것입니다. 일이 군무에 유익한 경우 품청하지 않고 전제하게 하는 것은, 이해와 안위에 긴절한 일을 반드시 주문하느라 왕복하게 되면 일순간에 앉아서 기회를 놓칠 뿐 아니라 또한 퇴곡하여 맡기는 뜻에도 어긋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생살여탈의 권한이라 하더라도 주고서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뜻...
한일관계사DB › 고려사 › 열전
박항
원나라 세조가 장차 일본을 정벌하고자 하면서 전함, 군량, 군사, 기자재를 모두 다 우리나라로 하여금 조달하라 하였으며 원수 흔도(忻都), 우승(右丞) 홍다구(洪茶丘)를 보내 감시, 독촉케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이고 신하고 모두 ‘예, 예’ 하고 복종할 뿐이었으며 실제에 있어서는 우리의 힘으로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박항(朴恒)이 왕에게 아뢰어 구체적 실정을 써서 원나라에 보고하게 하였다. 원나라 황제는 왕에게 좌승상 행중서성사(行中書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