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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춘2021해양문화재There are two purposes to this manuscript. Firstly, we study the different exile patterns shown in Korean exile culture. Because this resea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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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2020東洋學This paper examined 18th-century Jeju scholar Jang Han-cheol and Jeju Island people from the viewpoint of the travel record 『Pyohaerok』. To 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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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훈2019문화재The researcher analyzed and presented the status of studies and the current condition of the relics. The status of attached structures was also documented.Furthermore, a short review of the maintenance work performed so 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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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훈2019문화재Jeju Island is located at a strategic position, making it an important waypoint on the sea routes of East Asia. As a result, the island suff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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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수2019탐라는 곽지리식토기에 뒤이어 나타나는 고내리식토기가 확인되는 것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를 구분한다. 그동안 탐라후기 편년은 자체기록의 전무, 빈약한 고고학자료의 문제로 외부유물 편년에 의존해왔으나, 2013년부터 탐라후기의 자료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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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주2019해양문화재It is estimated that roof tiles were produced in Jeju Island from the 12th year in the reign of King Wonjong of the Goryeo Dynasty. It is es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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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남주2018한국학논총본 논문은 조선시기 제주 ‘관해로’와 관련하여 육지부 포구의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지리지에서 언급한 육지부 출발포구는 모두 3곳(나주, 해남 삼촌포, 강진 군영포)으로 조선시기 내내 변경이 없다. 이런 지리지의 내용을 다른 기록에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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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2018在外韓人硏究이 논문은 토장(土葬)의 문화를 가진 재일 동포1세에 대해서, 특히 한국에 있어서는변두리라고 할 수 있는 제주도 고내리 출신자의 죽음과 삶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1945 년 해방과 더불어 생계의 터전이 일본이던 사람이 많았던 고내리는 일본에서 돌아온 사람들로 넘쳐나 혼란스러운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더욱이 이러한 혼란에 박차를 가하듯이 많은 제주도민의 생명을 앗아간 4․3사건및 한국전쟁이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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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혁2016탐라문화삼별초는 1270년 제주도를 점령한 이후 1273년 제주에서 패망할 때까지 이곳을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었다. 제주도를 몽골에 대항하는 중요한 전략 요충으로 처음 파악한 것은 삼별초 세력이었다. 그러나 제주도를 전략 거점으로 실제 이용한 것은 몽골이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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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식2016탐라문화17~18세기 중반에도 제주도는 지속적으로 표류민이 발생한 지역으로 해역의 변화상을 설명해 주는 좋은 사례이다. 조선후기의 자료 『漂人領來謄錄』에는 일본으로 표류했던 제주도인의 표류사례 30건이 기록되어 있다. 제주도의 표류민은 바람과 해류의 영향으로 추자도와 제주 해역에서 표류당하여 일본의 九州의 肥前州, 筑前州, 對馬島에 주로 표착하였다. 표착 후에 표류민은 長崎나 對馬島를 거쳐서 조선 동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