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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도처치사도진무가 대마도 좌위문에게 답하는 서계를 올리다.
예조에서 경상우도처치사도진무(慶尙右道處置使都鎭撫)가 대마도 좌위문(左衛門)에게 답하는 서계를 올렸는데, 말하기를,
“사람이 와서 범절이 평안함을 알게 되니 기뻐하노라. 부탁한 등차랑(藤次郞)의 아들은 삼가 우리 사상대인(使相大人)에게 여쭈어서 역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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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부원군 성석린의 졸기.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 성석린(成石璘)이 졸하였다. 석린의 자는 자수(自修)이니, 경상도의 창녕 사람으로서 문정공(文靖公) 성여완(成汝完)의 아들이다. 스스로 독곡수(獨谷叟)라고 호칭하였다. 공민왕 6년 정유에 과거에 오르니, 나이 20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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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 24인이 귀화하기 위해 오다.
예조에서 경상도감사의 관문에 의하여 계하기를,
“대마도의 왜인 변삼보라(邊三甫羅)와 만시라(萬時羅) 등이 배 1척에 같이 타고 이달 12일에 해운포(海運浦)에 이르러 말하기를, ‘본도에는 전지는 적은데 부세는 과중하여 생계가 매우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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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에서 왜 객인의 육로 상경보다 수로가 편리함을 아뢰다.
병조에서 의정부와 여러 관청과 함께 의논하여 계하기를,
“왜 객인은 모두 육로 한 길로 서울로 올라오게 되니, 그런 까닭으로 각 역이 괴롭고 폐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만약 수로로 배가 다닐 만한 때이면, 물가의 각 고을 관선으로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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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조에서 대마주의 사신에 대해 후대할 것을 건의하다.
병조에서 경상도감사의 관문에 의하여 계하기를,
“대마주의 파지라사문(波知羅沙門)이 자기 집에서 부리던 피로된 본국인 김삼(金三)·박양잠(朴陽箴) 및 그의 일가에서 부리던 박기(朴奇)·금순(今順) 등의 사람들을 모두 보내 왔으니 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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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의준 ․ 평만경이 예조에 대장석전의 하사에 감사하는 서신과 예물을 보내다.
원의준․평만경 등이 사람을 보내어 토의를 바치었다. 원의준이 예조에 서신을 보냈는데, 그 서신에,
“우리 국왕이 청구한 대장석전(大藏釋典)을 보내 주심을 보니 은혜롭습니다. 〈대장석전〉을 실은 배가 대마도에서 바로 장문주(長門州)의 적간관(赤間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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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청의 거주지를 서울 근도로 정해 주다.
임금이 정부와 육조에 이르기를,
“이제 도망 온 장청(張淸)이 글도 알고 사리를 아는 자이니, 그로 하여금 서울 안에 거주하게 하기로 나의 뜻을 이미 정하였으나, 다시 생각하여 보니, 중국 사신이 나오게 되면 그들로 하여금 나가서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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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사신 규주 등이 돌아가기를 청하다.
병조에 전지하기를,
“이제 일본국왕 사신 규주 등이 돌아가기를 청하니, 각처에 나누어 두었던 왜인으로, 그 중 서울과 각도에 산재한 80명에게 말 탄 사람으로 행이(行移)하여, 경상도 내이포(乃而浦)에 모이게 하고, 사신이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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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신을 4, 50명으로 조절하여 서울에 보내도록 예조에서 하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방금 경상도 감사가 급히 보고하기를, ‘대마도 왜인 오라시라(吾羅時羅)가 와서 고하기를, 「일본국왕의 사신의 배가 지난 정월 27일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하오니, 청컨대, 선위사를 전례에 비추어 미리 임명하여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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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전국의 불경 판본을 보존 ․ 관리하는 대책을 아뢰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일본국왕과 여러 섬의 영주들이 불경의 판본을 구하는 자가 꽤 많사온데, 요즈음 서울과 지방의 폐지된 절들과 중이 없는 절간에 비치해 두었던 금·은으로 쓴 경문과 인쇄된 것이나 붓으로 쓴 갖가지 경문과 많은 경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