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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부원군 성석린의 졸기.
창녕부원군(昌寧府院君) 성석린(成石璘)이 졸하였다. 석린의 자는 자수(自修)이니, 경상도의 창녕 사람으로서 문정공(文靖公) 성여완(成汝完)의 아들이다. 스스로 독곡수(獨谷叟)라고 호칭하였다. 공민왕 6년 정유에 과거에 오르니, 나이 20세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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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이 이순신의 사당을 세우는 일에 관해 아뢰다.
6401. 홍문관이 이순신의 사당을 세우는 일에 관해 아뢰다.
홍문관이 아뢰기를,
“이순신(李舜臣)의 사당을 세우는 일에 관하여 전례를 고찰한 다음 아뢸 것을 전교하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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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이 왜를 막아낸 태조의 공을 치하하다.
4월, 공양왕이 중사(中使)를 보내어 문병하고 억지로 일어나게 하였다. 교서(敎書)를 공신에게 내려 그 공로를 칭찬하고 내구마(內廐馬) 1필, 백금(白金) 50냥, 비단과 명주 각 5단(端), 금대(金帶) 1개를 내리고 이내 내전에서 위로하는 연회를 개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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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공서
왕환(王環)은 영흥군(永興君)으로 책봉되었는데 그의 처남 신순(辛珣)이 신돈(辛旽)의 세력에 붙어살다가 처단될 때 왕환도 연루되어 무릉도로 귀양간 후 생사를 알지 못한 지 19년이 되었다. 그의 처 신씨가 왕환이 폭풍에 표류되어 일본국에 갔다는 소문을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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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연
김종연(金宗衍)의 아버지 밀직부사 정(精)은 신돈(辛旽)을 죽이려고 꾀하다가 사전에 누설되어 신돈에게 살해당하였다. 이때 김종연은 도망하여 숨어 있었는데 신돈이 처형되자 비로소 나와 다니게 되었다. 신우 때에 여러 번 원수로 되어 왜구를 쳐서 공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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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 최영(崔瑩)은 풍채가 헌걸차고 체력이 남보다 뛰어 났다. 처음에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의 휘하에 있으면서 누차 왜적을 사로잡아 용맹을 떨쳤으므로 달적(達赤)으로 채용되었다. …… 공민왕 6년에 외직으로 나가서 서해(西海), 평양(平壤),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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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광수
변광수(邊光秀)는 공민왕 때에 병마사로 되었다. 조정에서 전라도 군수 물자의 해상 수송이 왜적에게 저애되어 통할 수 없으므로 동북계의 무인들을 선발해 교동·강화·동서강(東西江)의 큰 병선 80여 척을 쓸어 모아 변광수와 병마사 이선(李善)에게 갈라 맡겨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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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굉
…… 공민왕 때에 왜적이 나주에 침입하였을 때에 김굉(金鈜)이 목포(木浦) 사람들을 인솔하고 적을 격퇴하여 그 공으로 복직되었으며 조정의 권세 있는 집들에 재물을 바치고 누차 전라도 포왜사(捕倭使)로 되어 자못 전공이 있었다. 그리고 홍적(紅賊)이 경성(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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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
…… 17년에 일본이 중 범탕(梵盪) 등을 파견하여 예방하여 왔다. 범탕 등이 행성으로 갔을 때 여러 재상들은 모두 일어섰는데 신돈(辛旽)은 홀로 남향하고 앉아서 접빈의 예가 없었다. 이에 범탕 등이 노하여 힐책하니 신돈은 대단히 분해하면서 구타하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