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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 허욱이 총독은 우리나라 일에 화를 내며 주본을 바꿀 것만 청한다고 치계하다.
청량사(請糧使) 허욱(許頊)이 치계하였다.
“신이 누차 민망하고 안타까운 뜻으로 도사에게 간청하여 총독에게 정소해 줄 것을 요청하니, 도사가 들어주려고는 하지 않고 주본을 바꿀 것만을 요구했습니다. 금주(金州)에서 보내주기로 한 군량의 일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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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를 막다가 전사한 김원계에게 관직을 추증하고 자손을 서용할 것을 건의하다.
간관이 상언하였다.
“이성만호(泥城萬戶) 김원계(金元桂)가 적이 선주(宣州)를 포위한 것을 듣고 곧 외로운 군사를 끌고 길을 배나 빨리 달려, 그 포위를 풀고 이긴 기세를 타서 패하여 달아나는 적을 쫓아 드디어 적중에 들어갔다가 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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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 선주 ․ 박주에 침구하여 조전절제사를 보내다.
왜가 서북면의 선주(宣州) 박주(博州)를 침구하니, 조전절제사(助戰節制使) 진을서(陳乙瑞)를 서북면에, 박만(朴蔓)을 풍해도에, 이빈(李彬)을 충청도에, 최운해(崔雲海)를 전라도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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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이 서북면에서 항복하니, 안마와 의관을 하사하다.
왜선 7척이 서북면(西北面) 선주(宣州)에 이르러 항복하기를 청하니, 항복한 왜인 구륙(仇陸)·등곤(藤昆)을 보내어 초유하고, 인하여 구륙에게 안마(鞍馬)와 의관(衣冠)을 하사하였다. 처음에 왜구가 명나라의 연해지방을 침략하고 우리 나라 풍해도·서북면 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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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륙이 항왜 14명을 데리고 오다.
구륙(仇陸)이 항복한 왜인 14명을 데리고 왔다. 구륙 등이 선주(宣州)에 이르러 만호 등시라로(藤時羅老) 등을 보고, 우리 나라에서 항복한 사람을 대접하기를 심히 후하게 한다고 타이르고, 또 전하의 어질고 위엄스러움을 말하니, 왜인들이 감동하고 기뻐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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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지를 보내어 항왜를 위로하고 군현에 분치하다.
판전중시사(判殿中寺事) 박돈지(朴惇之)를 보내어, 항복한 왜인을 선주(宣州)에서 위로하고, 각각 의관을 주었다. 만호 등망오시라(藤望吾時羅)·선주 피견도로(彼堅都老) 등 60여 인과 잡혀 온 중국 남녀 21명을 군현에 나누어 거처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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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이 선주에 쳐들어오다.
왜선 12척이 선주(宣州)에 쳐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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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선 14척이 장산곶에 이르러 약탈한 부녀자 17명을 돌려보내다.
왜선 14척이 풍해도 장산곶(長山串)에 이르러 부녀자 17명을 미라산(彌羅山) 봉졸에게 맡기고 갔다. 왜적이 중국의 경계에서 이곳에 이르러 봉졸 박기(朴基)를 잡아 사변을 묻고, 우리 나라에 방비가 있음을 알고는 일부러 화호의 뜻을 보이기 위하여, 지난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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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한 일본의 관선대사 여진 등과 대재부 소경전의 보통 상선에 탄 78명 등을 그 나라로 호송하다.
…… 이 달에 일본의 관선대사(官船大使) 여진(如眞) 등이 송나라에 들어가 불법을 배우려고 떠났다가 풍파를 만나 표류하여 승려, 속인 합계 230명은 개야소도(開也所島)에 닿았으며 265명은 군산(群山), 추자(楸子) 두 섬에 도착하였다. 한편 대재부(大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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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선주에 침입하였으나 양백연이 50여 명을 베다.
왜적이 선주(宣州)에 침입하였으므로 양백연(楊伯淵)이 맞받아 쳐서 50여 명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