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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2014인문사회과학연구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조공(朝貢) 관계를 맺고도, 조선 문인들은 청나라를 중화(中華로) 여기지 않았다. 그랬기에 연행(燕行) 초기에는 기록을 별로 남기지 않았으며, 북경(北京)에 가서도 그곳 지식인들과 한시를 주고받거나 필담(筆談)을 나누지 않았다. 1765년의 홍대용(洪大容), 김재행(金在行)이나 1780년의 박지원(朴趾源)에 와서야 청나라 지식인들과 필담을 나누거나 면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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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철2013韓國 詩歌硏究이 글은 조선초기의 연행록인 張子忠의 『判書公朝天日記』를 검토한 것이다. 필자에 의해 10년 전 발굴된 이 자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판서공조천일기』는 現傳하는 조선시대 최초의 북경 使行詩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연행록 중 선초의 대명사행 관련 자료는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이른 시기 명사행 기록으로 權近의 『奉使錄』(1389)이 있지만, 이때는 아직 조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