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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왕 비미호가 사신을 보내다.
왜국의 여왕 비미호(卑彌乎)가 사신을 보내어 내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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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 연합하여 왜국을 공격하기로 했으나, 서불한 홍권이 반대하다.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왜인이 자주 우리 성읍을 침범하여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없다. 내가 백제와 함께 계획을 세워 백제와 우리가 일시에 바다를 건너 왜국을 공격하고자 하는데 이 계획이 어떠한가?”
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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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과 교빙하다.
왜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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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왕이 아들의 혼처를 구하자, 아찬 급리의 딸을 보내다.
왜국 왕이 사신을 보내 자기 아들의 혼처를 요청하자, 아찬(阿湌)아찬(阿飡)신라 관계(官階) 중 6등위로 6두품(六頭品:得難) 신분층이 오를 수 있는 한계 관계이다. 아척간(阿尺干)이라고도 한다. 급리(急利)의 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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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이 사신을 보내 청혼했으나 거절하다.
왜국이 사신을 보내 청혼하였으나, 딸이 이미 출가하였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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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과 우호를 맺을 때 미사흔을 인질로 보내다.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내물왕(奈勿王)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인질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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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흔이 왜국에서 도망해 오다.
…… 왕의 아우 복호(卜好)가 고구려에서 제상[朴提上] 나마(奈麻)와 함께 돌아왔다. 가을에 왕의 아우 미사흔(未斯欣)이 왜국에서 도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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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칙사 유인원 ․ 웅진도독 부여융과 함께 웅진 취리산에서 화친을 맹서하다.
왕이 칙사 유인원(劉仁願)․웅진도독 부여융(扶餘隆)과 함께 웅진 취리산(就利山)에서 화친을 맹약하였다. 이보다 앞서, 백제의 부여장(扶餘璋)이 고구려와 화친을 맺으면서부터 자주 우리의 국토를 침범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는 연이어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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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이 나라 이름을 일본으로 고치다.
…… 왜국이 국호를 ‘일본’ 으로 고치고, ‘해돋는 곳과 가까이 있다’ 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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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당총관 설인귀에게 왕이 답장을 보내다.
대당총관(大唐摠管) 설인귀(薛仁貴)가 임륜(琳潤) 법사를 시켜 신라왕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 대왕의 답장은 다음과 같았다.
“…… 용삭(龍朔) 3년에 이르러 총관 손인사(孫仁師)가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부성(府城)을 구원할 때, 신라의 병마 역시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