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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22한일관계사연구이 논문은 한국의 표류(해난) 처리 관련 법령(法令)의 연원(淵源)을 법제사(法制史) 측면에서 살펴본 것이다. 현행 ‘수상구조법(水上救助法)’이 1961년 제정된 ‘수난구호법(水難救護法)’에서 시작되었으며, 1961년 대한민국 정부는 1914년의 ‘조선수난구호령(朝鮮水難救護令)’을 폐지하였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변천되었는지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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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2016지방사와 지방문화본고는 15~19세기 표류인 가운데 유독 ‘표류 제주인’들에게만 나타나는 모습, 즉 자신의 출신지를 숨기는 행동양상에 주목하여 시기별․표착 국가별로 그 실태를 추적해 나감으로써 궁극적으로 표류 제주인들이 출신지를 숨겨야만 했던 그 원인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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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수2016일본학연구본고는 1695년 1월 23일 이즈모(出雲) 간도군(神門郡) 사기우라(鷺浦)에 표착시 사망한 김옥복(金玉福)의 유해가 함께 표착한 일행과 더불어 조선에 돌아오지 못하고, 약 1년 8개월 뒤인 1696년 9월 18일에서야 송환된 사건에 대해 검토한 것으로 크게 네 단락으로 나누어 김옥복 시신 송환과정을 분석하였다. 첫째 ‘조선에 송환된 표류민 사망자’ 에서는 1695년 1월 23일 이전 일본에 표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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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2한일관계사연구1662년 해남 선비 김여휘와 제주 사람이 포함된 32명의 조선인이 해난 사고를 당하여 유구국 아마미오시마로 표류하였다. 그들은 9월 24일[서력 11.4] 제주 별도표를 출발하여 해남으로 향하다가 추자도 분근에서 서북풍을 만나 표류하기 시작하여 10월 5일[서력 11.15] 유구인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들 중 4명은 그들의 동료가 구조되기도 전에 배 안에서 목미 말라숨졌다. 생존자 28명은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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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건2011한국교육사학본 연구는 조선시대 제주도 주민이 남긴 표류기록을 중심으로 표류를 통한 이문화이해가 당대의 제주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제주도민들은 표류를 통해 타국의 문화를 접촉하게 되었고, 관련 기록을 남기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해와 정보를 습득하게 됨으로써 결국은 지역의 교육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표류의 양적인 증가와 함께 제주도민들의 이문화접촉 경험은 더욱 축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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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2010지방사와 지방문화문순득은 조선후기 현 신안군 우이도에 살았던 상인이다. 1802년 1월 태사도(현 대흑산도 인근)에서 표류하여 琉求·呂宋·澳門 등을 체험하고, 중국대륙을 경유하여 1805년 1월에 고향에 돌아왔다. 본 연구의 목적은 문순득이 표류를 통해 획득한 새로운 경험의 특징과 주변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검토하는 것이다. 문순득이 표류기간 중 체험한 지역 중에는 유독 국제적인 무역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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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09한일관계사연구전라남도 해남군에 소재한 대둔사(대흥사)의 천불전에는 옥돌로 만든 천불상이 있다. 그런데 이 천불전에 모시기 위하여 경상도 경주에서 조각한 천불상을 완도 장삿배와 홍원 장삿배에 각각 나누어 싣고 전라도 해남으로 오던 중 배가바다에서 표류를 당한 해난사고가 발생했다. 천불상 768좌와 승객 27명(승려 15명, 일반인 12명)을 실은 홍원배가 1817년 11월 25일 부산 동래 앞바다에서 표류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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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석2006한국문화연구이 논문은 최부(1454~1504)가 지은『표해록』(1488)의 중국 체험 부분을 기행문이라는 문학적 텍스트로 연구한 것이다. 『표해록』은 그동안 역사적 텍스트로 연구되어 왔지만, 최부 일행 43명이 제주에서 육지로 향하다가 표류하여 중국 강남 지역에 이른 뒤, 북경을 경유하여 조선으로 돌아온 내용을 담고 있는 문학적 텍스트이기도 한 것이다. 문학적 텍스트로 보면서 필자가 중시한 것은 당시 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