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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식량과 군병을 지원받는 문제 ․ 흉년으로 백성이 식인하는 문제 등을 대신 등과 의논하다.
상이 편전에 나아가 대신 및 비변사의 유사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장도사(張都司)의【이름은 삼외(三畏)임】자문을 보니 산동의 양곡을 지급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무슨 뜻인가?”
하니,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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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명 등의 사우 건립을 허락하다.
고경명(高敬命) 등의 사우 건립을 허락하였다. 처음에는 호남사람 이지효(李之孝) 등이 상소하기를 ‘고경명과 김천일(金千鎰)은 공이 똑같은데도 포증하는 은전이 김천일에게는 내리지 않았으니, 증직해 주었으면 합니다.’ 하고, 또 사재를 모아 묘우를 세워 숭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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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진주를 함락시키자 김천일 ․ 최경회 등이 전사하다.
왜적이 진주를 함락시켰다.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 등이 전사하였다.
당시 진주에서 급변을 보고하니, 이여송(李如松)이 경성에서 열둔의 제장인 유정(劉綎)·오유충(吳惟忠)·낙상지(駱尙志) 등에게 전령하여 군사를 전진시켜 구원하게 하였으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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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김상건과 박충검에게
예조에서 유생이 올린 상소와 상언으로 인하여 아뢰기를,
“증 참의 홍우정(洪宇定)은 이미 정경(正卿)으로 끌어올려 증직한 은전을 입었으니, 시호를 내리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증 승지 김상건(金象乾)은 바로 문열공(文烈公)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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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함락된 진주성 싸움의 자세한 경과.
당초에 적추(賊酋)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제추의 군대를 합치면 30만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자는 7~8만 명이라고 하였다. 왜적이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려 할 때 총병(總兵) 유정(劉綎)은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과 함께 대구(大丘)에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