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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가 중국 군대의 출동 상황을 치계하다.
해평부원군 윤근수(尹根壽)가 치계하였다.
“어제 심희수(沈喜壽)가 구원병을 요청할 일로 탕참으로 달리어 갔다가 오늘 사시에 돌아왔습니다. 듣자니 대조변(戴朝弁) · 사유(史儒) 두 장수가 군마를 거느리고 15일에 강을 건넌다고 하기에, 신은 강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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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사 이덕형이 의주에 도착하여 중국 군대의 출동 상황을 보고하다.
청원사 이덕형(李德馨)이 치계 하였다.
“신이 명을 받은 뒤에 일로의 마부와 말이 거의 다 도망하여 흩어져버렸기 때문에 어렵게 행진하여 오늘 사시에야 비로소 의주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침 광녕유격(廣寧遊擊) 사유(史儒)와 독전참장(督戰參將) 대조변(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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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판서 윤근수 등이 중국 군대의 이동 상황을 보고하다.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참판 유근(柳根)이 치계 하였다.
“이달 15일에 명조의 병마가 이른 아침부터 강을 건너 미시에 다 건넜습니다. 독전참장 대조변(戴朝弁)과 선봉유격 사유(史儒)가 거느린 군사는 1,029명이며, 말이 1,093필, 수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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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대가 도착하자 임반관에서 맞이하다.
요동유격 사유(史儒)와 원임참장(原任參將) 곽몽징(郭夢徵)이 기병 1천을 거느리고 임반관(林畔館)에 도착하니, 상이 곤룡포에 익선관 차림으로 서로 만나 재배를 끝내고, 상이 말하기를,
“불곡이 나라를 잘 지키지 못하여 오늘의 화란을 오게 하여 귀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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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차관들이 북경에 조선이 딴 마음이 없음을 보고하다.
승지 유근(柳根)을 보내어 하시(夏時)·황응양(黃應陽)·서일관(徐一貫)·사유(史儒)에게 문안하도록 하였다. 하시 등 세 사람이 강을 건너 돌아갔다. 그 후에 듣건대, 응양이 왜서를 가지고 달려가서 열흘 사이에 북경에 도착하였으며, 또 데리고 왔던 화사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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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전투 후에 양 총병이 왜적에 대한 정보 부족을 질책했다고 심희수가 보고하다.
이에 앞서 부총병 조승훈(祖承訓), 유격장군 사유(史儒)·왕수관(王守官) 등이 평양에 진격하여 17일 동틀 녘에 평양으로 돌격, 성에 포를 쏘고 관을 부수면서 길을 나누어 쳐들어가 몸을 돌보지 않고 전투를 독려하였다. 사유가 사졸보다 앞장서서 천총(千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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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원이 사유격에게 조문했다고 아뢰다.
예조참판 이충원(李忠元)이 아뢰었다.
“신이 오늘 아침 의순관(義順館)의 곽참장 · 동참장 · 왕중군이 있는 곳에 달려가서 문안하고, 그대로 명을 받들어 조제하는 일을 말하였더니, 양참장이 ‘매우 감사하다. 다만 사유격이 그대 나라의 일 때문에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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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를 인견하고 유성룡의 군량 조달, 평양 전투, 중국군의 실정 등을 묻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아가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를 인견하였다.【승지 신점(申點)】상이 이르기를,
“풍원(豊原)이 군량과 말먹이를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청병하려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근수가 아뢰기를,
“신이 안주에서 유성룡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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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우참의 형이 평양성 전투의 패배를 보고하다.
요동우참의(遼東右參議) 형(邢)이 상주하였는데, 그 대략에,
“요동순무(遼東巡撫)의 당보에 ‘부총병조(副總兵祖)가 7월 7일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유격(遊擊) 사유(史儒)와 천총(千摠) 장국충(張國忠)·마세룡(馬世龍) 등이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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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의 유격 사유, 참장 곽몽징이 군사를 거느리고 선천의 임반관에 도착하다.
요동의 유격 사유(史游), 참장 곽몽징(郭夢徵)이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선천의 임반관(林畔館)에 도착하였다. 상이 예복을 갖추고 나아가 보고 재배하며 사례하기를,
“한 나라의 존망이 대인에게 달려 있으니 오직 지휘만을 기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