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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부원군 김승주의 졸기.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김승주(金承霔)가 졸하였다. 승주는 전라도 순천부 여수(麗水) 사람으로 정주목사(定州牧使) 김유정(金惟精)의 아들인데, 너그럽고 중후하며 위의가 있었다. 홍무 경신년에 비로소 벼슬하여 흥위위별장(興威衛別將)에 제수되었고, 갑자년에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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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에서 금년 봄에 동을 채취하는 역사를 중지시키자고 청했으나 윤허하지 않다.
사간원 좌정언 성자량(成自諒) 등이 상소하기를,
“지금 호조의 수교를 보건대 경차관이 경상도에 이르러 각 고을의 각종 철공역(鐵工役)과 소속 선군을 모아서 동을 채취하라고 하였는데,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돈을 주조하는 일은 비록 폐지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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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 사로잡혔다 온 중국인 다금부를 명에 돌려보내도록 하다.
정사를 보았다. 예조판서 신상이 계하기를,
“중국인 다금부(多金夫)가 나이 네 살 때에 왜에게 사로잡혀 갔다가, 지난 기해년에 우리나라에 왔사온데, 이제 명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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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약재를 화매하여 백성의 병을 구제할 것에 관해 이르다.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 근신에게 이르기를,
“약재(藥材)를 화매하는 일은 이미 승문원제조(承文院提調)에게 명하여 의논하게 하였는바, 우리나라의 소산도 이미 족하나, 그러나 당약(唐藥)은 드물고 귀하여 아직도 약을 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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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고로 등 두 사람이 와서 토물을 바치다.
왜 공고로(孔古老) 등 두 사람이 와서 토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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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하천의 제방과 관개의 긴요함을 왜의 예를 들어서 유서를 지어 내리다.
임금이 친히 유서를 지어 황해도(黃海道)·평안도(平安道) 감사(監司)에게 내리기를,
“내가 들으니, 중국은 관개를 성하게 이용하는데, 흔히 수차로써 성공을 거두는 예가 많다고 한다. 또 들으니, 왜나라에서도 또한 관개를 이용하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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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중국군 장수와 주고 받은 왜적의 정세 및 조선의 형세에 대한 문답.
중국에서 군사를 내어 구원하려고 왜의 정세와 우리나라의 형세를 조목으로 물었다. 비변사가 조목에 따라 진술하였는데, 그 문답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1. 문:왜노의 분명한 수효는 얼마이며, 어떤 정세이고, 어디에 잠복하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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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관 유희서를 인견하고 심유경이 강화를 청하는 일, 평양 공격 등을 논의하다.
도원수의 종사관 유희서(柳熙緖)가 비밀히 계달하는 일로 오니 즉시 인견하였는데, 동부승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상이 유희서에게 이르기를,
“원수가 무슨 일 때문에 그대를 보냈는가?”
하니, 유희서가 대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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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응인이 송시랑을 만나 중국군의 출발 일정을 묻고 난 뒤 보고하다.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이 아뢰었다.
“2일 일찍이 송시랑(宋侍郞)의 아문(衙門)에 갔더니 시랑이 당에 앉아 있다가 회환하는 진주배신(陳奏陪臣)에게 상견례 행할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신이 역관 임춘발(林春發)을 시켜 들어가 아뢰게 하기를 ‘배신이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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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사 정곤수 등이 북경에서 돌아오자 인견하고 중국 조정의 상황 인식을 논의하다.
진주사 지중추부사 정곤수(鄭崐壽), 서장관 직강(直講) 심우승(沈友勝)이 북경에서 돌아오니, 상이 편전에서 인견하는데 동부승지 심희수(沈喜壽)가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진주한 일은 소원대로 되었는가?”
하니, 정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