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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김극괴가 거제 등의 원조 ․ 무재있는 사람을 군관으로 삼을 것 등을 청하다.
학생(學生) 김극괴(金克愧)가 상소하였는데 그 대요는, 경쾌한 병선 50~60척을 뽑아 견내도(見乃渡)에 모아서 적을 엿보아 엄습하여 먼저 거제를 원조하고 그 다음에 사량(蛇梁)을 원조하고 그 다음에 남해를 구원하게 할 것, 또 무재가 있는 사람을 황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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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병사 신길이 친병을 거느리고 호위하다.
함경남도 병사 신길(申硈)이 수하의 친병을 거느리고 들어와 호위하였다. 상이 남대문에 나가 부로와 군민들을 불러서 사수한다는 뜻으로 효유하였다. 상이 본부의 군병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유수 홍인서(洪仁恕)가 기병·보병 합해서 930여 명이라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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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사 윤승훈을 인견하여 전라 ․ 충청의 전투 상황 등을 묻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군사가 순안(順安)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크고 작은 싸움을 모두 수십 차례 하였으므로 전졸들의 고생이 다른 도보다 열 배나 더합니다. 비록 작은 공이라도 시상함에 있어 때를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인데 본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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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과의 전투 내용을 담은 자문을 요동에 보내다.
요동에 자문을 보냈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전라도병마절도사 최원(崔遠)이 8월 6일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강화부사(江華府使) 윤담(尹湛), 월곶진첨절제사(月串鎭僉節制使) 이빈(李薲) 등과 배를 타고 진격하니 적이 퇴각하여 토성으로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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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판서 이성중이 군량조달 상황을 아뢰다.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이 아뢰었다.
“신이 명을 받들고 직로(直路)의 군량을 살피고 겸하여 납부를 독려하였는데, 대소 인민들이 모두 사체가 중대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이르기를 ‘중국 군사가 머지않아 나올 것이니 있는 힘을 다해서 실어다 납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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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중국 군대의 양향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중국 군사가 온다는 소문이 허위가 아닌 듯하니 급히 선전관 두 사람을 보내 길을 나누어 경기 ․ 황해 ․ 충청 ․ 전라 ․ 강원 ․ 경상도의 순찰사 및 제장에게 통유하여 그들로 하여금 임시하여 거사하게 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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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수복 전투의 전모를 기록하다.
처음에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부총병 양원(楊元)을 중협대장으로, 부총병 이여백(李如栢)을 좌익대장으로, 부총병 장세작(張世爵)을 우익대장으로 삼고, 부총병 임자강(任自强)․조승훈(祖承勳)․손수렴(孫守廉)․사대수(査大受)와참장이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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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양호의 군량 수송, 이제독의 사우를 짓는 일을 논의하다.
상이 좌의정 윤두수(尹斗壽),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이조판서 이산보(李山甫),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이조참판 구사맹(具思孟), 도승지 유근(柳根), 병조참의 신점(申點), 동부승지 심희수(沈喜壽)를 인견하였다. 두수가 아뢰기를,
“평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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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가 충청 ․ 황해에 각도의 곡식을 운송하여 파종하게 하는 방안을 아뢰다.
호조가 아뢰었다.
“전에 경상 ․ 강원 ․ 함경 ․ 경기 등의 도는 분탕되었기 때문에 곡식을 운송하여 진휼하고 파종케 할 것으로 이미 계하하였습니다. 그러나 충청 ․ 황해는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이 두 도는 다른 도와는 약간 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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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이 중국군이 피폐한 상황임을 아뢰다.
공조정랑 서성(徐渻)이 아뢰기를,
“신이 칠성문으로부터 평양성으로 들어가면서 각 위에 주둔한 중국군을 보니 모두 극도로 수척하여 비록 다시 십여 일을 머물러 휴양하더라도 전쟁터에서는 쓸 수가 없으며 넘어져 다친 자 또한 부지기수였습니다. 중국군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