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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병사 신길이 친병을 거느리고 호위하다.
함경남도 병사 신길(申硈)이 수하의 친병을 거느리고 들어와 호위하였다. 상이 남대문에 나가 부로와 군민들을 불러서 사수한다는 뜻으로 효유하였다. 상이 본부의 군병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유수 홍인서(洪仁恕)가 기병·보병 합해서 930여 명이라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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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 및 비변사 당상과 평양으로 옮기는 일을 논의하다.
승지와 비변사 당상을 인견하였다. 윤두수(尹斗壽)가 아뢰기를,
“중로에는 신길(申硈) · 황윤용(黃允容)과 해주목사 등이 병사 1,000명을 이끌고 가게 되어 있으니 다시 대장을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대가가 보산관에 닿는다면 매우 편하실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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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원과 윤두수를 인견하고 지방군의 징병, 병사의 제수 등을 논의하다.
최흥원(崔興源)과 윤두수(尹斗壽)를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들은 유홍(兪泓)의 상소를 보았는가? 개성을 떠나게 한 것이 내가 한 것인가?”
하였다. 흥원이 아뢰기를,
“적병이 입성한 지가 3일이 되었는데 아직 싸움이 있었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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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도원수의 군대가 움직이지 않는다며 유극량에게 군사를 주어 적을 치게 하자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군사는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예기가 차츰 꺾이는 법입니다. 도원수가 대병력을 가지고도 강상에서 지키고 앉아 있는 지가 여러 날이 되었는데, 박성립(朴成立) 등의 참급을 보고서 진병하려고 한답니다. 이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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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임진강 수비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은 요즘 처사가 매우 사람들의 마음에 흡족하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성이 함락된 지 이미 오래인데 진격할 마음은 없고 오로지 물러앉아 나루터를 지키는 일을 상책으로 삼고 있으므로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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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원이 이일 등과 임진에 있었는데 5월 18일에 만나기로 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 패배하다.
이에 앞서 이양원(李陽元)은 이일(李鎰)·신각(申恪)·김우고(金友皐) 등과 함께 대탄에 있었고 한응인(韓應寅)과 김명원(金命元)은 권징(權徵)·신길(申硈)·이빈(李薲)·이천(李薦)·유극량(劉克良)·변기(邊璣) 등과 함께 임진에 있었는데, 5월 18일에 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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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임진에서 패배한 군사들이 공을 감추자 작은 공로라도 기록하도록 유시하기를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도원수와 도순검사의 장계를 보건대, 모두 임진에서의 패배를 미안하게 여겨 고전한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감히 공을 말하지 않았으며 싸움에서 노획한 물건은 간직해 두고 기다린다고 하였기에, 이미 책략을 바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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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임진 전투의 패배 상황, 군량의 조달, 각도의 전투 상황을 논의하다.
상이 대신 최흥원(崔興源)·윤두수(尹斗壽), 우찬성 최황(崔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호조판서 한준(韓準), 병조판서 김응남(金應南), 대사헌 이항복(李恒福), 동지 이성중(李誠中), 부제학 심충겸(沈忠謙), 대사간 정곤수(鄭崐壽), 동지 이덕형(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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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 당상을 인견하고 양총병 등 중국군의 형편, 요동 파천 등을 논의하다.
상이 행궁의 동헌에 나와 비변사 당상을【윤두수(尹斗壽)·한응인(韓應寅)·이항복(李恒福)·이성중(李誠中)·이덕형(李德馨)과 승지 유근(柳根), 주서(注書) 강욱(康昱)·구사맹(具思孟)·신잡(申磼)이 함께 입시하였다.】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