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금이 왜인들의 잠상과 많은 왜노가 머물러 있는 폐단이 없도록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일본국 사신이 머지않아 나오게 되는데 왜관에 불이 나서 다 타버렸으니 매우 놀랍고 걱정된다. 한결같이 구례대로 빨리 짓되, 다 짓기 전에는 왜인들이 멋대로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몰래 장사하는 것을 엄하게 단속하…
-
호남으로 진격하려는 왜적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신들이 듣건대 전일 금산(錦山)에 들어왔던 왜적의 수가 거의 10,000여 명에 이르는데 사납고 용감함이 비길 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라도의 병력은 다른 도와는 달라 웅치(熊峙)의 싸움과 이치(梨峙)의…
-
6월 29일 함락된 진주성 싸움의 자세한 경과.
당초에 적추(賊酋)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제추의 군대를 합치면 30만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자는 7~8만 명이라고 하였다. 왜적이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 진주를 공격하려 할 때 총병(總兵) 유정(劉綎)은 유격(遊擊) 오유충(吳惟忠)과 함께 대구(大丘)에 있고, 참…
-
전라관찰사 이정암이 해안지역 상황을 아뢰며 구원군의 파견을 청하다.
전라관찰사 이정암(李廷馣)이 치계하였다.
“작년 6월 27일 좌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 이순신(李舜臣)의 치보에 ‘부산 · 김해(金海)의 적선이 웅천(熊川)으로 옮겨 모였는데 그 수가 7~8백 척은 족히 된다.’ 고 했던 것을 이미 치계하였습니다. 웅…
-
정곤수 등이 전라도의 구원 요청과 이여송의 미온적인 반응을 보고하다.
정곤수(鄭崑壽)·이덕형(李德馨) 등이 치계하였다.
“어제 저녁에 도원수 권율(權慄)이 이 달 5일 운봉현(雲峰縣)에서 보낸 전통을 받았는데, 그 전통에 ‘7월 3일에 적의 무리가 운(運)을 나누어 1운은 구례(求禮)로 향했고 1운은 이미 운봉현의 경계에…
-
형조판서 이덕형이 이여송의 군량 독촉, 출발 날짜 지연 등을 보고하다.
형조판서 이덕형(李德馨)이 치계하였다.
“제독이 개성부(開城府)와 금교참(金郊站)에 양향(糧餉)이 떨어진 것 때문에 패문으로 엄히 신칙하고 있는데 각참에 군량은 계속 떨어져가는데 앞으로 일을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오시에 제독이 세 장…
-
유성룡이 명군에의 진격 요청, 아군 및 적세, 군량 문제 등을 보고하다.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이 치계하였다.
“신이 이달 9일에 유총병(劉總兵)이 합천(陜川)에 있다는 말을 듣고 즉시 달려가 만나기를 청하였더니, 총병은 온화한 기색으로 신을 만나 주었습니다. 신이 왜노가 거짓된 화의로써 명병의 진군을 늦추어 진주(晋州)를…
-
이정암이 명군의 남원성 주둔, 왜적의 구례 침입, 왜적 후퇴 등을 알리다.
전라도 관찰사 이정암(李廷馣)이 치계하였다.
“7월 12일에 보낸 병사 선거이(宣居怡)의 치보에 ‘전후에 내려온 중국 장수 낙참장(駱參將) · 송유격(宋遊擊) · 사총병(査總兵)·이도독(李都督)·고유격(高遊擊) · 오지휘(吳指揮) · 여상공(呂相公)과 …
-
제독을 접견하여 남쪽의 적세, 방어책을 논하고 예단을 주다.
이제독(李提督)과 양부총(楊副總)이 황주(黃州)에 이르니, 상이 제독에게 재배하자 제독도 답배하였다. 상이 또 양원에게 재배하니, 양원이 답배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대인의 은덕을 입어 오늘이 있게 되었으므로 온 나라의 군신이 그 은혜를 어…
-
선전관 유대기가 진주성의 함략 경위, 적도의 동향에 대해 보고하다.
선전관 유대기(兪大祺)가 치계하였다.【이 달 16일에 진주(晋州)에 있으면서 한 것이다.】
“신이 진주에 도착하여 성이 함락된 경위와 적도의 거류 등에 관한 일을 추문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6월 21일 이른 아침에 왜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