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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현을 남양에 합속시키는 문제를 논의하다.
이조에서 전라도 남양현(南陽縣) 경재소(京在所)의 고장(告狀)에 의거하여 의정부에 보고하기를,
“지금 고흥현(高興縣)이 남양에 합속하여 남양현이 본현의 치소(治所)가 되는데, 그 칭호에는 남양의 명호가 비치지 않았으니, 청하옵건대 다른 군현의 칭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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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부사 황희가 고흥진 설치의 타당성에 대해 건의하다.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황희(黃喜)가 상언하기를,
“신이 어제 고흥(高興)의 개호를 정지할 것과 옮겨 설치할 곳을 청하는 뜻으로 성상께 대략 아뢰어 윤허하심을 받자왔으나, 지금 다시 도순찰사(都巡察使) 신(臣) 정연(鄭淵)을 보내어 고흥을 옮길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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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진을 설치하다.
고흥현(高興縣)을 봉황암(鳳凰巖)의 서쪽으로 옮기고, 또 보성(寶城)의 임내(任內) 남양(南陽)․태강(泰江)을 떼어 붙여 이름을 흥양(興陽)이라 고치고, 동시에 진을 설치하니, 호구(戶口)가 730인이요, 전토(田土)가 4,146결이었다. 이 앞서 도순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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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를 대비한 세성의 수축을 정지하고 먼저 김제군의 벽골제를 쌓게 하다.
명하여 김제군(金堤郡) 벽골제(碧骨堤)를 쌓았다. 전라도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 박습(朴習)이 아뢰었다.
“성곽은 봉수(封守)를 견고히 하고 외모(外侮)를 막는 것이고, 제방은 수택을 저축하고 관개를 통하게 하는 것이니, 실로 환난에 대비하고 가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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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이 청주 ․ 유성 및 낙안군 ․ 고흥 ․ 풍안 등을 침범하다.
왜적이 청주(淸州)·유성(儒城)을 침범하고, 또 낙안군(樂安郡)·고흥(高興)·풍안(豊安) 등의 고을을 침범하여 민가를 공격하고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