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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접반사 장운익이 직산 전투의 상황을 보고하다.
제독접반사(提督接伴使) 장운익(張雲翼)이 아뢰기를,
“방금 직산(稷山)의 전쟁터로 부터 돌아온 중국 병사가 말하기를 ‘천안과 직산 사이에서 뜻밖에도 왜적의 선봉이 모두들 흰 옷을 입고 들판을 뒤덮어 오기에, 중국 병사들이 처음에는 조선 사람으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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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반관 신충일이 서계하여 직산 전투의 상황을 보고하다.
접반관(接伴官) 신충일(申忠一)이 서계하기를,
“이 달 7일에 흉적의 선봉이 천안에서 올라오자 해부총(解副摠)·양참장(楊參將)·파유격(頗遊擊)·우유격(牛遊擊) 등 네 장수가 정예병 2천 명과 장관 15명을 뽑아 거느리고서, 직산으로부터 15리쯤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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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이 왜적을 추격하고 있다고 접대도감이 보고하다.
접대도감이 아뢰기를,
“방금 파발아의 보고에 의하면, 파(擺)·시(柴) 양유격(兩遊擊)이 추격하여 왜적의 머리 18급(級)을 베고 바야흐로 승승장구하며 추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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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진천의 왜군이 이미 형강을 떠났음을 보고하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제독이 파(擺)·시(柴)·팽(彭) 세 장수에게 분부하여 금강 가에서 왜적을 추격하도록 하였는데 어제 또 46급을 베었으며, 진천(鎭川)의 왜적은 이미 형강(荊江)을 건너 떠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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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도감이 왜군을 추격하는 중국군의 전과를 보고하다.
접대도감이 아뢰었다.
“당일에 팽(彭)·파(擺)·시(柴) 세 장수가 먼저 돌아와 왜적을 추격하였는데 형강(荊江)에 이르러 접전하여 연승을 올렸습니다. 시유격(柴遊擊)의 군사들은 14급을 베었으며, 파유격(擺遊擊)은 손수 4급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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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접대도감 관원 및 후궁을 수행한 재신을 추고할 것을 건의하다.
사간원이 아뢰었다.
“근래에 접대도감의 일처리가 너무 느슨하여 중국 장수가 어디를 갔다가 돌아오거나 출입하는 것을 바로 입계하지 않아 위문하는 예절이 언제나 뒤늦으니, 중국 장수가 노여워하고 괴상히 여깁니다. 어제 파유격(擺遊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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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 파귀의 관사에 나아가 접견하고 위로하다.
상이 파유격(頗遊擊)의【이름은 파귀(頗貴)이다.】관사에 나아가서 접견례를 행하였다.【일찍이 직산의 싸움에서 많은 참획의 공이 있었으므로 상이 직접 가서 위로하였다.】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본국을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왜적을 무찔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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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 접반사가 호남의 왜적을 추격할 중국군 장수들의 명단을 보고하다.
제독접반사가 아뢰었다.
“경리가 왜적이 아직도 임실(任實)과 남원에 있으되 그 수가 많지 않으며 또한 오래지 않아 물러가려는 뜻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부총 이여매(李如梅) 등 세 장수를 제독 아문에 보내서 두세 차례 상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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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장수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부총 이여매(李如梅)·유격 파귀(頗貴)·유격 파새(擺賽)·참정 양등산(楊登山) 유격 우백영(牛伯英)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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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도감에서 적군과 아군의 대치 상황 등 전황을 보고하다.
군문도감(軍門都監)이 아뢰었다.
“제독(提督)의 차관에게 물어보니 ‘23일과 24일 양일간 교전한 뒤에 곧 도산(島山) 성 아래로 진격하였다. 성은 모두 네 겹으로 되어 있는데, 외성(外城)은 주위가 산아래에 까지 닿아 있고 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