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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 접반사가 호남의 왜적을 추격할 중국군 장수들의 명단을 보고하다.
제독접반사가 아뢰었다.
“경리가 왜적이 아직도 임실(任實)과 남원에 있으되 그 수가 많지 않으며 또한 오래지 않아 물러가려는 뜻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부총 이여매(李如梅) 등 세 장수를 제독 아문에 보내서 두세 차례 상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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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에 왜란을 겪은 후 병력이 감축되어 7천명을 다 보낼 수 없는 이유를 적어 보내다.
격문에 답한 자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국왕은흠차총독계요보정등처군무겸리양향경력어왜병부좌시랑겸도찰원우첨도어사(欽差總督薊遼保定等處軍務兼理粮餉經略禦倭兵部左侍郞兼都察院右僉都御史) 왕(汪)으로부터 ‘우리 대명의 위령 운운’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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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목사 조사수에게 제주지역 군사의 문제점을 의논하라 이르다.
제주목사 조사수(趙士秀)가 올린 계본과 상소를 정원에 내리면서 이르기를,
“이 상소를 보니 이 사람은 생각이 깊다. 어찌 범연히 헤아려서 이렇게 썼겠는가. 의례적인 일로 계하해선 안 되니 정부가 합좌하는 날 병조의 당상도 같이 불러 의논하라. 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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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이 일본과의 강화와 병란에 대비할 것 등에 대한 상소를 올리다.
홍문관 전한 이황(李滉)이 상소하기를,
“신은 생각하건대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에 이적은 금수라고 합니다. 이적도 사람이지만 이를 금수에 비유하는 것이 진실로 심한 말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의를 몰라 군신상하의 분별이 없어서 그 삶이 어리석고 무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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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이 왜를 막아낸 태조의 공을 치하하다.
4월, 공양왕이 중사(中使)를 보내어 문병하고 억지로 일어나게 하였다. 교서(敎書)를 공신에게 내려 그 공로를 칭찬하고 내구마(內廐馬) 1필, 백금(白金) 50냥, 비단과 명주 각 5단(端), 금대(金帶) 1개를 내리고 이내 내전에서 위로하는 연회를 개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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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
…… 공민왕 원년에 이색(李穡)은 복중에 있으면서 상서하기를,
“…… 근년에 왜적이 우리 강토로 침범해 전하께서 끊임없이 걱정하시게 됩니다. 물론 귀족 대신들과 덕망 있는 원로들이 상호 협의해 그 대책을 타당하게 세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