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부원군 김승주의 졸기.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김승주(金承霔)가 졸하였다. 승주는 전라도 순천부 여수(麗水) 사람으로 정주목사(定州牧使) 김유정(金惟精)의 아들인데, 너그럽고 중후하며 위의가 있었다. 홍무 경신년에 비로소 벼슬하여 흥위위별장(興威衛別將)에 제수되었고, 갑자년에 군...
-
김영렬과 김승주에게 왜구를 공격할 계책을 논의케 하다.
도평의사사에 명하여 수군 절제사 김영렬(金英烈)과 형조전서 김승주(金承霔)를 불러서 왜구를 공격할 계책을 논의하게 하였다.
-
명에서 돌아온 통사 엄밀이 보고한 중국의 일본 정벌 계획에 대해 의논하다.
하정사(賀正使)의 통사(通事) 임밀(林密)이 경사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정월 20일에 황제가 선유하기를, ‘일본국 노왕(老王)은 지성으로 사대하여 도둑질함이 없었는데, 지금의 사왕(嗣王)은 초절(草竊)두타산성(頭陀山城)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에 위치...
-
호조참의 황자후가 왜구대책에 대해 복명하다.
호조참의(戶曹參議) 황자후(黃自厚)가 복명하였다. 임금이 황자후가 살펴 본 바대로 배가 정박하는 곳을 개착할 만하다고 하니, 김승주(金承霔)가,
“왜구가 때없이 침입하니, 마땅히 봉수를 삼가고 척후를 엄격히 해야 합니다. 배를 정박하는 해문(海門)...
-
대마도 왜인의 무례함을 다스릴 방법을 논하다.
정사를 보았다. 허조가 계하기를,
“대마도의 사자를 어떻게 처리하리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부왕께서 말씀하시기를, ‘대마도가 송희경을 박대하였을 뿐 아니라, 또 그들의 말이, 우리가 등차랑(藤次郞)과 삼미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