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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에 상주하는 문서에 맹가첩목아가 왜를 막은 공을 적다.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이행(李行)을 경사(京師)에 보내어 상주하게 하였다.
“영락 3년 3월 11일에 왕교화적(王敎化的)이 칙유(勅諭)를 흠봉(欽奉)하고 본국에 이르렀으므로, 이에 배신 곽경의(郭敬儀)를 차임하여 칙유에 따라 동행시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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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에서 돌아온 통사 엄밀이 보고한 중국의 일본 정벌 계획에 대해 의논하다.
하정사(賀正使)의 통사(通事) 임밀(林密)이 경사에서 돌아와 아뢰었다.
“정월 20일에 황제가 선유하기를, ‘일본국 노왕(老王)은 지성으로 사대하여 도둑질함이 없었는데, 지금의 사왕(嗣王)은 초절(草竊)두타산성(頭陀山城)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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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천군과 지의정부사가 북경에서 돌아와, 일본정벌과 조선침략등에 대해 논하다.
길천군(吉川君) 권규(權跬)·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여칭(呂稱) 등이 북경(北京)에서 돌아와서 아뢰었다.
“황제가 잔치를 내려 주어 후하게 위로하고, 권규에게 구마(廐馬) 3필, 단(段)·견(絹)을 각각 8필씩 하사하였습니다. 또 궐내의 환관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