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국왕의 사신 규주 ․ 범령 등 135명이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왕의 사신 규주(圭籌)․범령(梵齡)과 도선주(都船主) 구준(久俊) 등 135인이 대궐에 나아가서 토의를 바치니, 임금이 인정전에 나아가서 예를 받은 뒤에, 규주와 범령은 대궐 안에 들어오도록 명하고, 구준은 대궐 밖에 있도록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
규주 ․ 범령 등이 대장경판 청구하는 글을 예조에 올리다.
규주와 범령 등이 예조에 글을 올려 말하기를,
“귀국에 들어온 이래로 전하의 융숭하신 대우를 입었고, 더욱이 전날 대궐에 나아가서 숙배할 때에 크게 후하신 연향을 더하여 내리시와, 하정에 기뻐함을 일일이 들어 말씀할 수 없습니다. 우리 본조의 요구하...
-
일본국 사신 규주 등이 대장경판을 얻고자 지신사에게 올린 글.
규주 등이 지신사(知申事)에게 글을 올리기를,
“규주 등이 지난 세말에 모두 명을 받들어 전정에서 배례하기를 들어주시므로, 삼가 온 뜻을 아뢰었더니, 전하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장경판은 다만 1벌뿐이니 내려 줄 수 없고, 다시 금자(金字)로 쓴 ≪화...
-
일본국 사신 규주 등이 대장경판을 얻지 못하자 단식하다.
규주와 범령이 경판을 구하였다가 얻지 못한다 하여, 음식을 끊고 말하기를,
“우리들이 온 것은 오로지 대장경판을 구하려는 것이다. 우리들이 처음 올 때에 어소(御所)에 아뢰기를, ‘만일 경판을 받들고 올 수 없을 때에는, 우리들은 돌아오지 않겠다.’...
-
왜통사 윤인보와 그의 아우 윤인시, 왜노 3명을 의금부에 가두다.
왜통사 윤인보(尹仁甫)와 그의 아우 윤인시(尹仁始)와 그의 집에 있는 왜노 3명을 의금부에 가두고, 영의정 유정현과 참찬 안순(安純)․병조판서 조말생․대사헌 하연․형조판서 권진(權軫)․동부대언(同副代言) 정흠지(鄭欽之)․우사간(右司諫) 박관(朴冠)을 보내어...
-
일본국 사신들이 예궐하여 절하고 하직하다.
일본국왕 사신이 예궐하여 절하고 하직하니, 임금이 흰 옷에 익선관(翼善冠)과 흑대(黑帶) 차림으로 인정전에 거둥하여 알현하게 하였다. 정사 규주(圭籌)와 부사 범령(梵齡)을 전 안에 들어오게 하고, 도선주 구준(久俊)은 서계(西階)에 있게 하였다. 임금이 ...
-
일본회례사 판선공감사 박안신 등에게 선물과 함께 답신을 보내다.
일본회례사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 박안신(朴安臣)과 부사 대호군 이예(李藝) 등이 배사하니, 임금이 박안신과 이예 등을 인견하고 각기 옷 1벌과 갓과 신을 내려 주고, 종사관 공달(孔達)과 최고음(崔古音)․박침(朴忱)에게도 또한 옷 1벌과 갓과 신을 내렸다...
-
일본국 회례사 박안신과 이예를 내전에 불러 접견하다.
일본국 회례사 상호군 박안신(朴安臣)과 부사 대호군 이예(李藝)가 복명하였는데, 임금이 내전에 불러 들여 접견하였다. 안신이 계하기를,
“신 등이 처음에 적간관(赤間關)에 이르자 규주(圭籌)가 국서를 등사하여 급히 어소(御所)에 보고하였는데, 55일...
-
일본 국왕에게 전하는 회답의 글을 왜국 사신에게 주다.
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니, 왜국 사신 중태와 범령 등 40여 인이 절하여 하직하고, 상사와 부사는 전 안에 올라와 서남쪽에 부복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웃에서 좋게 지냄이 이미 오래였으며, 구하는 경판을 줄 수가 있으면 어찌 2번 청하기를 기다리...
-
대장경판을 그 고을의 수령으로 하여금 온전히 보존하게 하다.
임금이 승지들에게 이르기를,
“일본국에서 매양 대장경판(大藏經板)을 청하니, 우리나라에서 불교를 숭상하지 아니하여, 이 판이 밖에 있기 때문에 억지로 청하면 반드시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 까닭이다. 지난날에 이 판을 구하기에, 대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