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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통사 박기와 박용진을 처벌하다.
형조에서 계하기를,
“왜통사(倭通事) 박기(朴奇)·박용진(朴用珍) 등이 왜사를 거느리고 여흥(驪興)에 이르러, 왜인을 추켜 우리나라 사람을 때리게 하고 또 왜인을 추켜 관청에 바로 들어오게 하고 또 부녀자들을 놀래고 두렵게 하였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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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통사 윤인보와 그의 아우 윤인시, 왜노 3명을 의금부에 가두다.
왜통사 윤인보(尹仁甫)와 그의 아우 윤인시(尹仁始)와 그의 집에 있는 왜노 3명을 의금부에 가두고, 영의정 유정현과 참찬 안순(安純)․병조판서 조말생․대사헌 하연․형조판서 권진(權軫)․동부대언(同副代言) 정흠지(鄭欽之)․우사간(右司諫) 박관(朴冠)을 보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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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발의 사건에 대해서 홍성부를 국문하게 하다.
귀화한 왜인인 부사직(副司直) 변상(邊相)이 고하기를,
“왜통사(倭通事) 홍성부(洪成富)가 본디 이춘발(李春發)과 틈이 졌으므로, 성부(成富)가 그를 죽인 것 같습니다.”
하니, 명하여 성부를 가두고 국문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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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에서 홍성부 ․ 이득시 등이 이춘발을 죽인 사유를 아뢰다.
의금부에서홍성부(洪成富)․김생언(金生彦)․이득시(李得時)․간충(干冲) 등이 이춘발(李春發)을 죽인 사유를 국문하여 아뢰었다. 처음에 홍성부가 이춘발의 왜통사의 직임을 빼앗고자 하여 김생언과 함께 이춘발을 모해하려 하니, 김생언이 본래부터 아는 이득시와 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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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통사 이춘발의 죽음에 관해 논하다.
하교하기를,
“형벌은 정치를 돕는 일이라, 예전에 교화가 성하던 시대에도 진실로 없앨 수 없었던 것이다. …… 기유년 어두운 밤에 왜통사 이춘발(李春發)을 도둑이 길 위에서 쳐죽이고 그 막대기 나무는 버리고 갔는데, 춘발의 사위가 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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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통사 윤인보 등을 시켜 백성에게 칡뿌리 캐먹는 법을 전수시키다.
왜통사 윤인보(尹仁甫)․윤인소(尹仁紹) 등이 가뭄으로 인하여 흉년 구제의 계책을 진술하면서 아뢰기를,
“일본사람들은 상시로 칡뿌리와 고사리뿌리를 먹으니, 만약 이것을 사용하여 흉년을 구제한다면 이치가 있을 듯합니다.”
하니,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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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통사 윤인보만을 벌하다.
우헌납(右獻納) 배강(裵杠)이 아뢰기를,
“헌부에서 아뢴 문사와 예 등의 사건은 윤허하심이 마땅하며, 또 듣자오니, 근일에 예조에서 아뢴 왜통사(倭通事) 윤인보(尹仁甫)를 기복(起復)시켜서 출사하도록 허가하신다는 바, 신 등은 생각하기를, 무릇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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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가 삼포의 금망 조건을 새로 하여 아뢰다.
경상도관찰사가 아뢰기를,
“삼포(三浦)의 금망(禁網)이 소루하고 주밀한 것이 같지 않아 고찰하는 것이 해이하기 때문에, 왜인(倭人)들이 조금도 두려워하고 꺼리는 것이 없이 더욱 방종을 자행하므로 금하고 막는 조건을 삼가 뒤에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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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라가 명을 듣고 기뻐하며 길을 떠나다.
왜통사(倭通事) 이수재(李秀才)가 경상도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도구라(都仇羅)가 명령을 듣고 기뻐하여 이미 길을 떠났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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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통사 최웅이 윤인소의 사목과 종정성의 서계를 가지고 대마도에서 돌아오다.
왜통사(倭通事) 최웅(崔雄)이 윤인소(尹仁紹)의 사목(事目)과 종정성(宗貞盛)의 서계를 가지고 대마도에서 왔는데, 그 사목에 말하기를,
“1. 지난 6월 30일에 대마도에 도착하여 예조의 서계를 전해 주고 종정성에게 일렀더니, 대답하기를, ‘이 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