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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이 유구국 표류자의 쇄환에 대해 아뢰다.
정원이, 홍문관이 ≪고려사(高麗史)≫에서 고찰한 유구국(琉球國)에서 표류한 사람들을 쇄환한 전례를【공양왕 3년에 유구국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이 그의 신하 옥지(玉之)를 보내 표문(表文)을 올려 신(臣)이라 일컫고 포로가 된 우리나라 사람 김윤후(金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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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이 칭신하며 예물과 피로남녀 8인을 송환하다.
이 해에 유구국(琉球國)의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신하로 일컫고 글을 받들어 통사(通事) 이선(李善) 등을 보내어 예물를 가져와서 바치고, 아울러 사로잡혔던 남녀 8명을 송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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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이 망명한 산남왕의 아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다.
유구국(琉球國)의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서 전문(箋文)과 예물을 바치고, 피로되었던 남녀 12명을 돌려보내고서, 망명한 산남왕(山南王)의 아들 승찰도(承察度)를 돌려보내 달라고 청하였다. 그 나라 세자 무녕(武寧)도 왕세자에게 글월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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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이 피로 ․ 표류인 9인과 글을 보내오다.
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어 글을 바치고 방물을 바쳤으며, 잡혀 있던 사람과 바람을 만나 표류한 사람 9명을 돌려보냈다. 서신은 이러하였다.
“양의(兩儀)의 덕이 합하매 사시(四時)가 차서 있게 나뉘고, 여러 나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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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왕 찰도가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치다.
유구 국왕(琉球國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어 전(箋)을 받들고 방물을 바치고, 또 왕세자에게 예물을 바쳤다. 그 나라 세자 무녕(武寧)이 또한 왕세자에게 예물을 바쳤다. 사자가 따로 방물을 좌·우 정승 민제(閔霽)·하륜(河崙)에게 보내니, 민제와 하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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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 사소가 예물과 피로인을 송환하다.
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 사소(思紹)가 사신을 보내어 내빙하고, 자문하였다.
“1. 수사(酬謝)에 대한 일. 생각컨대, 홍무연간(洪武年間)에 여러 번 귀국에서 사신을 보내어 본국에 이르렀고, 진귀한 물건을 하사하여 맹약과 소식을 통하고 휴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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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후 등이 유구로부터 돌아오다.
김윤후(金允厚) 등이 유구(琉球)로부터 돌아왔다.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또 그 신하 옥지(玉之) 등을 파견하여 칭신(稱臣)하면서 표문을 올리고 납치되었던 우리나라 사람 37명을 돌려보내었으며 토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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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 찰도가 옥지를 파견하여 신하를 자칭하며 왜의 포로였던 본국사람을 귀환시키다.
…… 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옥지(玉之)를 파견하여 글을 올려 신하로서 자칭하였으며 왜적에게 포로당하여 간 우리나라 사람들을 귀환시키고 그 지방의 산물인 유황 3백 근, 소목 6백 근, 호초 3백 근, 갑옷 20벌을 바쳤다. 이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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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 찰도가 왜적에 잡혀간 인구를 돌려보내다.
유구국(琉球國)의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와서 빙문하고, 우리나라에서 왜적에게 사로잡혀 간 인구를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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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 찰도가 사신과 함께 피로인 37명을 돌려보내다.
유구국 중산왕(中山王) 찰도(察度)가 사신을 보내와서 빙문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사로잡혀 간 백성 37명을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