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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위사를 보내 유구국 사신을 데려오게 하다.
예조에서 아뢰기를,
“유구국 중산왕(中山王)이 보낸 사람을 청하건대, 일본국왕의 사신의 예에 의거하여 그 도의 역승으로 하여금 데리고 오도록 하소서.”
하니, 지신사 안숭선이 아뢰기를,
“유구는 일본과 같지 않으니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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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망궐례를 행하고 유구국 사신의 자문을 받다.
경복궁에 거둥하여 왕세자와 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동지를 하례하는 망궐례를 거행하고, 근정전에 나아가서 왕세자와 많은 신하들의 하례를 받았다. 유구 국왕의 사신 하례구(夏禮久)와 부사 의보결제(宜普結制)와 선주 등이 서반 3품의 반열에 서서 배례를 마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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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 상금복의 사자 도안이 방물을 바치다.
유구국 중산왕(中山王) 상금복(尙金福)의 사자 도안(道安)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그가 가지고 온 자문은 이러하였다.
“복마령(卜麻寧) 등이 고한 것에 의거하면, ‘조선국 인민이 근년에 바닷가를 행선하다 태풍을 만나서 바다 위에서 표류하다가 일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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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유구국에서 조선인 두 명을 송환시켜준 사실 등을 아뢰다.
유구국 중산왕(中山王)의 사자 도안(道安)을 예조에서 연회하였다. 예조에서 도안의 말을 기록하여서 아뢰기를,
1. 지난 경오년에 귀국 사람 4명이 표류하다가 와사도(臥蛇島)에 정박하였는데, 그 섬은 유구도(琉球島)와 살마(薩摩)의 사이에 있어서 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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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의 중산왕이 사자를 보내어 표류인을 보내오다.
유구국의 중산왕(中山王)이 보수고(普須古)·채경(蔡璟) 등을 보내어 와서 토물을 바치고, 본국에 표류한 인구를 거느리고 왔는데, 그 자문(咨文)은 이러하였다.
“제후로 봉하여 각각 한 방면을 진압하고, 뜻을 이어받아 술사하며, 함께 만재에 전하고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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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사신의 의심스러운 점을 선위사로 하여금 진위를 알아보게 하다.
또 명하여 유구국 사신의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윤필상(尹弼商)·이극배(李克培)·한치형(韓致亨)·정괄(鄭佸)·이극돈(李克墩)은 의논하기를,
“지금 유구국에서 온 서계를 살펴보건대, 대개 행문한 것이 왜서와 같은 것이 첫째로 의심나는 것이고, 서두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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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의 세자가 자문과 예물을 보내오다.
유구국 중산왕(中山王)의 세자 상녕(尙寧)이 자문을 보내고 견(絹) 40단과 토선(土扇) 2백파를 보냈다.【이때 우리나라의 사신이 동지절을 축하하려 북경에 갔었는데 유구에서도 이 반열에 참여하고 이어 이 물건을 보냈다. 사신이 돌아올 때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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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 중산왕의 세자 상령이 후의에 보답하기 위해 자문을 보내 오다.
유구국(琉球國) 중산왕(中山王)의 세자 상령(尙寧)이 자문을 보내 알려 왔는데, 후의에 보답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문에,
“관추(關酋)가 방자하게 거역하여 신인(神人)이 함께 분노하였는데, 하늘이 교만한 오랑캐를 망하게 했으므로 해내(海內)에 기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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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왕이 표류한 사람들을 돌려보낸 것에 대해 물품을 바치고 자문하니, 유구국에 답사하다.
〈유구국 중산왕(中山王)에게 이자하여 후의에 답사하고 이웃 나라 사이에 영원히 우호를 맺을 것을 말하였는데, 그 자문은 다음과 같다.
“만력(萬曆) 34년 8월 13일의 귀국 자문에 의하면, 귀국과 폐방(敝邦)이 국경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의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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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국왕이 조경사신을 통하여 형제의 맹약을 맺자는 자문을 보내다.
유구국왕이 조경사신을 인하여 우리에게 자문으로 답하였는데, 그 자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구국 중산왕(中山王)이 후한 인정에 감사하며 영원히 이웃간의 호의를 맺자는 일에 관한 내용입니다. 만력(萬歷) 34년 8월 14일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