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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우2018한일관계사연구이 글에서는 먼저 『해동제국기』의 「일본본국지도」가 道安이 가지고 온 지도로 생각되며, 종래의 행기식 지도와 일정한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항로의 표시와 항로 상의 중요한 경유지를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적인 행기도로부터 중세적인 지도로 변모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구주 지도는 지명의 표기 양상으로 보아 역시 일본에서 입수한 지도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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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화2017本論文では朝鮮後期の海外情報の源泉として重要視されていた漂海録を全般的に検討し、海外の知識情報が流入、受容されていく過程について考察した。朝鮮後期の漂海録を対象に、この時期、漂流を通じた海外の知識情報の流入と、対外交流の実像を明らかにし、海外の知識情報の拡大が朝鮮の知識風土にいかなる変化を引き起こしたかを考察した。 これまで漂流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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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식2016한일관계사연구이 글은 태권도학계에서 과거 수십 년 동안 논란이 되어온 우리 고유무술이 태권도로 발전했다는 ‘전통주의 역사관’과 태권도의 원류가 일본 가라데였다는 ‘수정주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인 의문을 바탕으로 연구한 것이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의 표류민들이 유구(오키나와)에 표착한 후 무술을 가르친 흔적과 이들의 영향을 받은 오키나와인들이 일본 본토에 가라데를 보급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오키나와 가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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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2한일관계사연구1662년 해남 선비 김여휘와 제주 사람이 포함된 32명의 조선인이 해난 사고를 당하여 유구국 아마미오시마로 표류하였다. 그들은 9월 24일[서력 11.4] 제주 별도표를 출발하여 해남으로 향하다가 추자도 분근에서 서북풍을 만나 표류하기 시작하여 10월 5일[서력 11.15] 유구인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들 중 4명은 그들의 동료가 구조되기도 전에 배 안에서 목미 말라숨졌다. 생존자 28명은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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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영2010이 글은 이러한 고고학적 자료와 자연과학 분석 자료를 토대로 충적평야 유적조사에 적합한 지형환경분석을 시도하여 100년 이하 시간단위의 지형과 그 지형에 입지하는 충적평야의 청동기시대 유적의 입지와 토지 이용을 살펴보기 위해 시도되었다. 이를 위해 Ⅱ장에서는 충적평야에서 이루어진 고고학․지리학 연구를 정리하고 논고에서 쓰일 지형에 관해 대략적인 개념을 살펴보았다. 지형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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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경2007한일관계사연구『海東諸國紀』는 신숙주가 1443년 일본에 서장관으로 방문하여 기록했던 日本國, 九州, 壹岐, 對馬島, 琉球國의 자료를 성종 2년(1471)에 간행한 책으로, 199여개의 지명 자료는 국어사 연구 및 한일 중세어 표기법 연구에 중요하다. 『海東諸國紀』의 일본 지명은 15세기 한국 한자음을 원용하여 漢字借字表記法 중 音借 表記와 訓借 表記로 기록한 것으로, 대부분의 지명은 음차 표기이지만 ‘訓羅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