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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화2017本論文では朝鮮後期の海外情報の源泉として重要視されていた漂海録を全般的に検討し、海外の知識情報が流入、受容されていく過程について考察した。朝鮮後期の漂海録を対象に、この時期、漂流を通じた海外の知識情報の流入と、対外交流の実像を明らかにし、海外の知識情報の拡大が朝鮮の知識風土にいかなる変化を引き起こしたかを考察した。 これまで漂流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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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오2017日本文化學報In the San Francisco Peace Treaty, there is a so-called ‘Korean article’ in Chapter 2 (Territory), Article 2 (a): “Japan, recognizing the inde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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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6한일관계사연구조선 정부는 공무역(公貿易)에서 일본이 가져온 물품에 대하여 15세기 초부터 면포 즉 공목(公木)으로 결제해 주기 시작했다. 17세기 중엽~19세기 중엽에는 공목의 일부를 쌀로 바꾸어 지급했는데 그것을 공작미(公作米)라 불렀다. 왜관을 통해 대마도로 건너간 조선의 공목과 공작미는 일본 대마도 경제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글에서는 1860년대 공목과 공작미 문제를 분석하였다. 1862년에는 조선의 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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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해2014한일관계사연구언론은 집단적 기억의 형성에 개입한다. 해마다 3?1절, 광복절 등의 국경일이 돌아오면 언론은 역사적 교훈과 쟁점을 재조명함으로써 공동체의 정체성을 관리한다. 언론의 재구성을 통해 집단의 기억은 수정되기도 하고 고착화되기도 한다. 언론은 또한 이를 통해 여론 형성과 집단적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운 지리적 특성만큼 깊은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다. 역사적 깊이만큼 일본에 대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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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익2014石堂論叢This essay is a research to the relation between Japan and Korea through an analysis of Jegi(題記) in transcription of Buddhist Scriptures that 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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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기2013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우리 역사상 조선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으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전국토가 유린되고 살인, 방화, 약탈은 물론 수많은 양민과 기술자의 나포, 문화재 반출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가운데 서적의 약탈 및 반출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약탈된 서적 중에는 내사본을 포함하여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조선전기 완질본이 다량으로 전존되고 있다. 일본 지역 내사본의 실제적 내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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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찬호2007한일관계사연구통신사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한일 양국에서 많은 축적을 보아 왔는데,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역사학과 문학 분야였다. 역사학 분야에서는 주로 문화교류사에 중점을 두어, 통신사를 매개로 유학, 본초학(한의학), 서예 등을 중심으로 한 문화의 접촉, 정치적인 내막, 통신사를 매개로 한 경제유통사 등이 다루어졌다. 특히 최근에는 상류계급뿐 아니라 일반대중과의 교류, 통신사 통과지역에 남은 축제 등 민속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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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東翼2002退溪學과 韓國文化이 논문은 조선중기의 武臣인 朴弘長(1558-1598)의 생애와 그가 1596년 通信副使로서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의 일기인 『동사록』을 소개한 것이다. 박홍장은 1592년 임진왜란 때의 유명한 武將인 朴毅長의 동생으로 濟州 助防將·大丘府使 등을 역임하면서 전란의 타개를 위해 군비의 확충에 노력하였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惠政을 베풀고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량미의 확보에 진력하여 대구지역이 영남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