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박옹(泊翁) 이명오(李明五, 1750~1836)의 문집이다. 저자의 아들 만용(晩用)이 부친이 지은 1만 수가 넘는 작품 가운데 일부를 산정 편차하여 당대 경화세족(京華世族)인 김좌근(金左根), 정원용(鄭元容), 조두순(趙斗淳) 등 6인에게 서문을 받아 1859년에 활자로 인쇄한 후 1860년에 자신의 발문을…
조선 시대 사촌(沙村) 안덕린(安德麟, 1563~1609)의 문집이다. 저자의 저술은 병란(丙亂)을 거치며 거의 다 없어지고 시문(詩文) 1권, 《가례》ㆍ《중용장구》ㆍ《대학장구》에 대한 차의(箚疑) 약간 편이 가장(家藏)되어 있던 것을 100여 년 후 현손 안수태(安受泰)가 소실(燒失)되고 남아 있던 가장초고(家藏草稿)…
조선 시대 만취정(晩翠亭) 박영석(朴永錫, 1735~1801)의 문집이다. 본집은 서발문이나 사기(寫記) 등 관련 자료가 없어 명확한 서사 경위를 알 수 없으며, 작은 글씨로 오자를 일부 수정한 점, 권수제가 글의 중간에 반복되어 있는 점, 일부 글의 문체 분류가 명확하지 않으며 제목도 분명하지 않은 작품이 있는 점 등…
조선 시대 치서(菑墅) 한경의(韓敬儀, 1739~1821)의 문집이다. 본집은 차남 흥교(興敎)와 장손 영희(永煕)가 마지온(馬之溫)의 행장을 받아 정리하였으나 문집 내에 서발 등이 없어 간행 주체나 편찬 경위 및 활자로 인행한 연대는 분명하지 않아 1832년 이전에 활자로 인행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본집은 6권 3…
조선 시대 우원(尤園) 이정국(李楨國, 1743~1807)의 문집이다. 본집은 아들 광일(光一)이 가장을 짓고 유심춘(柳尋春)에게 행장을, 유태좌(柳台佐)에게 묘갈명을 받아 유적을 정리하고 유고도 수습하여 초고 상태로 가장하였으나, 서발(序跋)이나 간기(刊記) 등이 없어 간행 경위는 분명하지 않고, 증손 택건(宅鍵)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