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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장보고(張保皐)【「신라 본기」에는 궁복(弓福)으로 되어 있다.】와 정년(鄭年) 【년(年)은 연(連)으로도 쓴다.】은 모두 신라인이다. 그들의 고향과 조상은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모두 전투를 잘하였으며, 정년은 또한 바닷물 밑으로 들어가 50리를 잠수하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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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
박제상(朴堤上)【혹은 모말(毛末)이라고도 한다.】은 시조 혁거세의 후손이요,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5세 손이고, 조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며, 아버지는 물품(勿品) 파진찬(波珍湌)이었다. 제상은 벼슬길에 나아가 삽량주간(歃良州干)삽량주현재의 경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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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조부는 나마담날(奈麻談捺)이며 부친은 원효(元曉)이다. 원효는 처음에 중이 되어 불서에 통달하였으나 얼마 후에 속인으로 되돌아와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불렀다. 총은 성질이 총명하고 예리하며, 나면서부터 도술을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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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 ․ 세오녀
제8대 아달라왕(阿達羅王) 즉위4년 정유에 동해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가서 해조(海藻)를 따고 있던 중 홀연히 한 바위【혹은 일어(一魚)라 함】가 있어 (그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 나라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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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춘추공
…… 신라별기에는 문호왕(文虎王) 즉위 5년 을축 가을 8월 경자에 왕이 친히 대병을 거느리고 웅진성에 가서 가왕 부여융(扶餘隆)을 만나 단을 만들고 백마를 희생하여 맹세할 때, 먼저 천신과 산천의 영(靈)에 제사지내고 그런 후에 삽혈하고 글을 지어 맹세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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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성대왕
이찬 김주원(金周元)이 처음에 상재(上宰)상재(上宰)상대등(上大等)을 말한다.가 되고, 왕은 각간으로서 차재에 있었는데 꿈에 복두를 벗고 소립을 쓰고 12현금을 들고 천관사(天官寺)천관사(天官寺)경북 월성군 내남면 일남리에 있던 절. 우물로 들어갔다. 꿈을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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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여 전백제
≪구당서(舊唐書)≫에는 백제는 부여의 별종으로 동북은 신라, 서는 바다를 건너서 월주(越州)월주(越州)중국의 강소(江蘇)·절강(浙江) 등지를 말함.에, 남은 바다를 건너서 왜(倭)에 이르고 북은 고려(高麗)에 경계하고, 그 왕이 있는 곳에는 동서양성(東西兩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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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9층탑
신라 제27대 선덕왕 즉위 5년인 정관 10년 병신에 자장법사(慈藏法師)가 서쪽으로 유학하여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수법을 감득할 때【자세한 것은 본전에 보인다.】문수가 또 이르기를,
“너희 국왕은 천축찰리족(天竺刹利族)의 왕이니 미리 불기를 받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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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목 가림현 남포현
남포현(藍浦縣)은 원래 백제의 사포현(寺浦縣)인데 신라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서림군의 관할 하에 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에 본 현에 소속시켰으며 후에 감무를 두었다. 신우 6년에 왜구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사람들과 가축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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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목 남해현
남해현(南海縣)은 원래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인데 신라 신문왕이 비로소 전야산군(轉也山郡)을 설치하였으며 경덕왕은 남해군으로 고쳤다. 현종 9년에 현령을 두었고 공민왕 7년에 왜적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이 지역을 잃었으므로 진주 관내의 대야산부곡(大也山部曲)에 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