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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에서 중국 사신이 돌아갈 동안 왜 ․ 야인 접대에 대해 아뢰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중국의 사신이 돌아갈 동안에, 왜 객인은 이르는 각 고을마다 정류시켜 우대하고, 올량합(兀良哈)과 올적합(兀狄哈)은 돌려 들여보내게 할 것입니다.”
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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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되었던 당인 장청 등이 돌아오다.
납치되었던 당인(唐人) 장청(張淸) 등 남녀 모두 12인이 경상도로부터 역말을 타고 왔다. 처음에 장청 등이 왜구에게 납치되어 일본에 거주한 지 7년 만에 왜의 배를 몰래 훔쳐 가지고 그의 무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와서 본토로 돌아가기를 희망한 것이다. 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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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청의 거주지를 서울 근도로 정해 주다.
임금이 정부와 육조에 이르기를,
“이제 도망 온 장청(張淸)이 글도 알고 사리를 아는 자이니, 그로 하여금 서울 안에 거주하게 하기로 나의 뜻을 이미 정하였으나, 다시 생각하여 보니, 중국 사신이 나오게 되면 그들로 하여금 나가서 보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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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유정현 등을 불러 당인 장청 등의 본국 송환을 논의하다.
임금이 영의정 유정현(柳廷顯)․좌의정 이원(李原) 등을 불러서 말하기를,
“지난번에 당인 장청(張淸)을 조정 논의에 따라 전주(全州)에 우거하게 하였으나, 내 마음에 몹시 미안했소. 경들은 깊이 생각하여서 말을 하오. 전번에 〈장청에게〉 관직을 주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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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군 신정리가 경상우도 병마사의 왜구방어에 소홀함을 상서하다.
호군 신정리(申丁理)가 상서하기를,
“신이 작년 가을에 경상도경차관(慶尙道敬差官)으로 명을 받았었는데, 보고 들은 것이 퍽 옳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각 관에 모두 아록전(衙祿田)·공수전(公須田)이 있는데, 그 수입이 1년간 경비에 충당할 수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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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망궐례를 행하고 근정전에서 조하를 받다.
임금이 면복(冕服) 차림으로 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망궐례를 행하고, 원유관과 강사포 차림으로 근정전에 나아가 여러 신하의 조하를 받았다. 왜인․야인․회회승도(回回僧徒)들도 신하들의 반열에 따라 나왔다. 의정부에서 옷의 겉감과 안찝과 안장 갖춘 말을 올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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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정전에 나아가 회시에 입격한 유생 남수문 등에게 책문하다.
근정전에 나아가서 회시(會試)에 입격한 유생 남수문(南秀文) 등에게 책문(策問)하였다. 그 책문에,
“왕은 말하노라. 대개 듣건대 요순의 지혜로서도 반드시 급무부터 먼저 한다는 것은 맹자의 격언이니, 정치를 말하면서 급무를 먼저 하지 않는다면 모두 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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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에 세자의 양관을 청하는 문제 등에 대해서 논의하다.
조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대언들에게 말하기를,
“명분은 천하의 중대한 일이다. 세자의 양관(梁冠)양관(梁冠)조선시대 문무백관이 조복(朝服)과 제복(祭服)을 입을 때 쓴 관.은 마땅히 속히 조정에 청구하여야 하겠다. 예전에 정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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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백편상서≫를 사오게 하다.
임금이 대언 등에게 말하기를,
“일본국에 ≪백편상서(百篇尙書)≫가 있다고 들었는데, 통신사(通信使)로 하여금 사오도록 하고, 또 왜국의 종이는 단단하고 질기다 하니, 만드는 법도 배워 오도록 하라.”
하니, 지신사(知申事) 정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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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에 사로잡혔다 온 중국인 다금부를 명에 돌려보내도록 하다.
정사를 보았다. 예조판서 신상이 계하기를,
“중국인 다금부(多金夫)가 나이 네 살 때에 왜에게 사로잡혀 갔다가, 지난 기해년에 우리나라에 왔사온데, 이제 명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