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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6년(1015) 을묘년
6년 봄 정월
○ 거란이 압록강에 교량을 가설한 후 다리의 좌우에 동서로 성을 쌓으므로, 아군이 장수를 시켜 쳐부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계묘일. 거란군이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자 장군 고적여(高積餘) 고적여 그는 이후 현종 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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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25년(1071) 신해년
25년 봄 정월
초하루 정해일. 신년하례 행사를 생략했다.
기해일. 김행경(金行瓊)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판상서형부사(判尙書刑部事)로, 최유부(崔有孚)를 상서우복야로, 홍덕위(洪德威)를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정유산(鄭惟産)을 한림학사(翰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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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6년(1015) 을묘년
六年 春正月 契丹作橋於鴨綠江, 夾 夾 동아대본 원문이 ‘내(來)’자이나, 아세아문화사본 원문과 『고려사절요』의 원문이 ‘협(夾)’자이며, 뜻으로도 후자가 옳다.橋築東西城, 遣將攻破, 不克. 癸卯 契丹兵圍興化鎭, 將軍高積餘․趙弋等擊却之. 甲辰 又侵通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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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25년(1071) 신해년
二十五年 春正月 丁亥朔 放朝賀. 己亥 以金行瓊爲尙書左僕射判尙書刑部事, 崔有孚爲尙書右僕射, 洪德威爲兵部尙書, 鄭惟産爲翰林學士. 辛丑 以金良鑑爲尙書左丞知御史臺事, 盧寅爲尙書右丞左諫議大夫. 壬寅 以子琇爲檢校尙書令守司空, 崔惟善守司徒, 異惟忠守司空. 壬子 以金行瓊叅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