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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6년(1015) 을묘년
6년 봄 정월
○ 거란이 압록강에 교량을 가설한 후 다리의 좌우에 동서로 성을 쌓으므로, 아군이 장수를 시켜 쳐부수고자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계묘일. 거란군이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자 장군 고적여(高積餘) 고적여 그는 이후 현종 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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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7년(1041) 신사년
7년 봄 정월
초하루 경술일. 신년하례 행사를 생략했다.
병진일. 서여진의 대승(大丞) 고지지(高支智) 등 15명이 와서 말을 바쳤다.
2월
초하루 경진일. 상서공부(尙書工部)에서, 송악산(松岳山)의 동서 기슭에 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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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6년(1015) 을묘년
六年 春正月 契丹作橋於鴨綠江, 夾 夾 동아대본 원문이 ‘내(來)’자이나, 아세아문화사본 원문과 『고려사절요』의 원문이 ‘협(夾)’자이며, 뜻으로도 후자가 옳다.橋築東西城, 遣將攻破, 不克. 癸卯 契丹兵圍興化鎭, 將軍高積餘․趙弋等擊却之. 甲辰 又侵通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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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7년(1041) 신사년
七年 春正月 庚戌朔 放朝賀. 丙辰 西女眞大丞高支智等十五人來, 獻馬.
二月 庚辰朔 尙書工部奏, “松岳東西麓植松, 以壯宮關.” 從之. 己丑 賜兪暢等及第. 壬寅 西女眞奉國將軍尼于大等十八人來, 獻名馬.
三月 庚戌朔 東女眞中尹也賜老等來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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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도王可道
왕가도(王可道) 왕가도(?~1034)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후손인 청주 이씨(淸州李氏) 가운데 한 가계 출신으로, 처음 이름을 이자림(李子琳)․이가도(李可道)라 하다가 왕씨(王氏) 성을 받아 왕가도라 하였다. 이 집안은 왕가도가 현종 때 평장사를 역임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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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도王可道
王可道, 初名子琳, 淸州人, 本姓李. 成宗朝, 擢魁科, 補西京掌書記. 顯宗五年, 上將軍金訓․崔質等作亂. 由是, 武臣用事, 悍夫兇豎, 並帶文官. 羊頭狗尾, 布列臺閣, 政出多門, 朝綱紊亂. 可道以和州防禦使, 秩滿還京, 在私第. 心懷憤激, 密謂日直金猛曰, “王何不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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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京官寮加職遙謝儀
서경(西京)(지금의 평양특별시)에서 산관(散官)의 직함을 받은 사람들은 장락궁(長樂宮) 장락궁 고려시대 서경(西京)(지금의 평양특별시)의 성곽 안에 있던 정궁(正宮)으로, 정전(正殿)인 장락전(長樂殿)이 있었으며, 서경으로 행차한 국왕이 임시로 머물며 정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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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京官寮加職遙謝儀
西京受散官者, 會長樂宮, 向闕再拜, 奏聖體, 拜舞拜. 訖, 謝恩致詞, 拜舞拜, 稱新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