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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주2021일본근대학연구梁山 法基里 窯址는 사적 제100호로서 한국과 일본의 도자기 교류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高麗茶碗은 일본에서 조선시대 사발을 아우러는 용어이다. 양산 법기리 요지에서 수습된 사금파리를 통해 자기의 樣態, 文樣 등이 일본에 다수 존재하는 고려다완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양산 법기리 요지 관련 문헌자료를 재검토한 결과 첫째, 조선 전기의 지리지 분석을 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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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철2016한일관계사연구기유약조 체제가 붕괴되는 과정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조선의 외교 능력과 동래부의 교섭 태도에 대한 철저한 멸시로 일관되어 있다. 그리하여 ‘메이지 일본이 우호를 요청하였으나 쇄국을 고집하는 조선이 사소한 자구를 문제삼아 거절을 반복’하였다는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모든 외교적 갈등을 조선의 책임으로 돌렸다. 본고에서는 동래부에 시점을 두고 출입국 선박에 대한 문정과 동래부의 보고를 토대로 연표를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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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6한일관계사연구조선 정부는 공무역(公貿易)에서 일본이 가져온 물품에 대하여 15세기 초부터 면포 즉 공목(公木)으로 결제해 주기 시작했다. 17세기 중엽~19세기 중엽에는 공목의 일부를 쌀로 바꾸어 지급했는데 그것을 공작미(公作米)라 불렀다. 왜관을 통해 대마도로 건너간 조선의 공목과 공작미는 일본 대마도 경제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글에서는 1860년대 공목과 공작미 문제를 분석하였다. 1862년에는 조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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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한일관계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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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덕기2011한일관계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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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2010한일관계사연구17~19세기에 왜관은 동래에만 존재하였다. 왜관은 일본과 조선, 일본과 동래, 대마도와 동래의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장소였다. 신왜관이 건설된 지 1년 후인 1679년에는 일본인이 출입하는 범위를 정하였다. 북쪽의 사카노시타를 지나 구왜관으로 이어지는 노선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다. 開市貿易의 장소는 開市大廳이다. 개시대청은 조선상인이 왜관에 들어가 교역하는 가장 합법적인 장소였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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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은2010한일관계사연구근세시기 쓰시마는 도쿠가와 바쿠후에게 있어서 조선관련 정보 및 중국 대륙 관련 정보 수집을 위한 주요한 대외창구였다. 쓰시마는 조선과의 外交?貿易 업무가 이루어지는 倭館을 중심으로 조선 및 중국관련 情報를 수집하였으며, 정보수집의 최전선에는 조선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 朝鮮語通詞가 있었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조선의 정치?사회?경제?문화 전반에 관한 내용과 함께 중국?북방?유럽의 상황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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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2008한일관계사연구본 논문은 2007년 검정을 통과한 6종의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일본사B)를 그 이전의 교과서와 비교하면서 근세 한일관계 기술 내용에 대한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검토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2007년 고등학교 교과서(일본사B)는 어느 교과서를 막론하고 통신사 문제를 비롯한 에도시대 한일관계에 대한 기술이 단원편제상 대부분 에도시대 초기에 집중되어 있었으며,?근린제국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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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2004한일관계사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