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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판장기현사 김인우를 우산도 ․ 무릉도 등지의 안무사로 삼다.
전 판장기현사(判長鬐縣事) 김인우(金麟雨)를 우산도(于山島)․무릉도(武陵島) 등지의 안무사로 삼았다. 당초에 강원도 평해 고을 사람 김을지(金乙之)․이만(李萬)․김울금[金亐乙金] 등이 무릉도에 도망가 살던 것을, 병신년에 국가에서 인우를 보내어 다 데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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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사 이만이 부산 동왜관을 농한기에 다시 지을 것을 청하다.
경상감사 이만(李曼)이 부산의 동왜관의 재목과 기와를 철거했다가 농한기를 기다려 다시 짓게 할 것을 청하니, 조정에서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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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첨사 조광원을 부산왜관의 담장을 개조할 때, 왜인에게 잡혀 구타당한 일로 파직하다.
다대포첨사(多大浦僉使) 조광원(趙光瑗)이 죄 때문에 파직되었다. 이때 부산의 왜관을 개조하려 했는데, 광원에게 그 역사를 감독하게 했었다. 왜관의 뒷담장이 매우 좁아서 왜인들이 매양 물려 쌓아줄 것을 청하였는데, 이 때에 이르러 관왜들이 다시 동래부사 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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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동래부사 노협으로 하여금 왜인들을 개유하고, 관우는 내년봄에 조성하도록 청하다.
부산의 왜관을 지키는 왜인들이 담장을 물려 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에 대해 노하여 터를 닦지 못하게 하였다. 정즙(鄭檝)이 역관을 시켜 꾀었으나 따르지 않았다. 감사 이만(李曼)이 이런 내용으로 치계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관우와 담장은 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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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가 대신 등에게 표류한 한인을 왜관으로 보내려는 것과 성지를 수리한 것 등을 힐문하다.
청사(淸使)가 대신·육경·양사·승지 등 4인을 불러서 정명수(鄭命守)를 시켜 묻기를,
“왜인의 실정에 대한 주문은 누가 주관하였는가? ‘표류해온 한인을 왜관으로 보내지 않으면 왜가 필시 화를 낼 것이다.’ 고 하였는데, 이후로 표류한 한인을 잡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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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옥된 이만과 노협 등이 왜의 봉행과 서신을 교환한 것 등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다.
이만(李曼)과 노협(盧協) 등을 하옥시켰는데, 이만이 공초하기를,
“신은 억울하게 사문(査問)을 받았으나, 삼가 인자하신 성상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비호해 주심으로 인하여 하찮은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나추하시나 이는 부모의 견책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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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사신이 왜를 핑계대고 군비를 늘리는 것은 청과의 관계에 좋지 않다는 칙서를 가져오다.
청사(淸使) 3인이 용만(龍灣)에 도착하였다. 원접사(遠接使) 한흥일(韓興一)이 칙서를 등서해 보내 보고했는데, 그 칙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문에 의거하건대, 왜국과 서로 사이가 좋지 않으므로 성을 수리하고 군사를 모으고 병기를 정돈한다고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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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대신들에게 우리나라가 군사를 늘린다는 청의 의심에 대해 변명할 것을 논의하다.
상이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제 원두표(元斗杓)의 말을 듣고 오늘 칙서의 등본을 보니 그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이는 두 신하에게만 죄를 주려는 것이 아니고 온 나라를 의심하는 것이니, 내가 놀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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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사 이요 등이 청나라에 가서 왜국 방비와 관련된 주문을 올리다.
진주사(陳奏使) 인평대군(麟坪大君) 이요(李㴭) 등이 청나라에 가 주문을 올렸다. 주문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삼가 살펴보건대, 왜국과 우리나라는 통신을 한 지가 비록 오래되었으나 교활한 왜인들의 정상은 본래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지난해 이래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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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우를 무릉도 등지의 안무사로 파견하다.
김인우(金麟雨)를 무릉(武陵) 등지 안무사(安撫使)로 삼았다. 호조참판(戶曹參判) 박습(朴習)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강원도 도관찰사로 있을 때에 들었는데, 무릉도(武陵島)의 주회(周回)가 7식(息)이고, 곁에 소도(小島)가 있고, 전지가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