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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체찰사 이덕형의 서장에 답하여, 풍신중명과 제주의 일에 대한 대책을 묻다.
상이 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의 서장에 답하였다.
“서장을 살펴보았고 아울러 풍신중명(豊臣重明)의 글도 보았다. 그 글은 왜승의 글이 아닌 듯한데 혹시 우리나라 피로인이 쓴 것이 아니겠는가. 중명이 설사 성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경솔하게 불러들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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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윤승훈 ․ 조익 ․ 김지남 ․ 이충원 등과 시국을 논하다.
묘시 정각에 상이 별전에 나아가 ≪주역(周易)≫을 강하였다. 시독관 조수익(趙守翼)이 이괘를 진강하였는데 서괘에서 양덕·양신·절무까지 하였다. 강을 마치고 나서 윤승훈(尹承勳)이 나아가 아뢰기를,
“신이 은가를 받아 양주에 가서 소분할 때 경차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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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가 가신을 시켜 서계를 만들어 보내다.
구례에 일본 대마도유후(對馬島留後)와 동래부사 및 부산첨사는 도서를 찍어 서계를 통하면서 그 예를 대등하게 하였는데, 올봄에 이르러 유후의 가신이 스스로 서계를 만들어 동래에 보내어 지난해 종왜가 다대포첨사(多大浦僉使)를 때리고 욕한 죄를 빌고 또 도주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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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도주가 가신을 시켜 서계를 대신 만들게 한 것은 물리쳐야 할 것이라고 이르다.
상이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김자점(金自點)이 아뢰기를,
“어영군의 번과 보에 관한 사의는 검토하여 의정하느라고 미처 회계하지 못하였습니다. 대장 이완(李浣)은 말하기를 ‘열읍을 순열하고 시재하여 뽑아야 정예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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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옥된 이만과 노협 등이 왜의 봉행과 서신을 교환한 것 등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다.
이만(李曼)과 노협(盧協) 등을 하옥시켰는데, 이만이 공초하기를,
“신은 억울하게 사문(査問)을 받았으나, 삼가 인자하신 성상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비호해 주심으로 인하여 하찮은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나추하시나 이는 부모의 견책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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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대신들에게 우리나라가 군사를 늘린다는 청의 의심에 대해 변명할 것을 논의하다.
상이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어제 원두표(元斗杓)의 말을 듣고 오늘 칙서의 등본을 보니 그 뜻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이는 두 신하에게만 죄를 주려는 것이 아니고 온 나라를 의심하는 것이니, 내가 놀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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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정문부를 추증하고 자손을 녹용하도록 하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들을 인견하였다. …… 태화(太和)가 이단하(李端夏)의 소장에 대해 아뢰기를,
“이는 정문부(鄭文孚)를 포장하여 증직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북도의 백성들이 왕자와 대신을 잡아가지고 주군에 웅거하여 반란을 일으켜 왜적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