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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순찰사 이광이 경상순찰사 김수와 충청순찰사 윤국형의 군사와 합류하다.
전라순찰사 이광(李洸)이 군사를 거느리고 북정하여 경상순찰사 김수(金睟)와 충청순찰사 윤국형(尹國馨)의 군사와 합류하였다. 처음에 이광이 왜적이 깊이 침입했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이동하여 토벌할 것을 계청하니 상이 서찰을 내려 칭찬하며 유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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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부사 윤안성과 구례현감 조사겸이 군사를 불러모아 공주로 진격하다.
이광(李洸)이 먼저 경내에 이르러 군사를 모으니 여러 고을의 군사들이 전장에 나아가기를 기피하여 옥과(玉果)·순창(淳昌)의 군인이 먼저 난을 일으켰는데 형대원(邢大元)·조인(趙仁)이란 자가 괴수(魁首)가 되어 노령(蘆嶺)에서 막고 버티다가 얼마 뒤에는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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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조헌이 청주성을 회복하다.
의병장 조헌(趙憲)이 청주성(淸州城)을 회복하였다.
조헌이 처음에 수십 명의 유생과 뜻을 모아 의병을 일으킨 뒤 공주(公州)와 청주 사이에 가서 장정을 불러 모으니 응하는 자가 날마다 모여들었다. 그러자 순찰사와 수령이 관군에게 불리하다고 여겨 갖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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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헌이 천문과 인사의 길흉을 헤아렸는데 이는 지극하게 시운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조헌(趙憲)의 자는 여식(汝式)이고 호는 중봉(重峯)이다. 본래 고려 충신인 원수 조천주(趙天柱)의 후손으로 가세가 중간에 한미해졌다. 부친 조응지(趙應祉)는 김포현(金浦縣)의 교생이었는데, 집이 가난하여 스스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조헌은 유년시기에 자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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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영규를 지중추부사에 추증하다.
승려 영규(靈圭)는 당초 공주(公州) 산사에 있었는데, 목사 허욱(許頊)이 불러 승장을 삼았으나 하려 하지 않다가 강권한 뒤에야 응하였다. 일단 무리를 모아 군대를 만들고 나서는 오직 조헌(趙憲)만을 따라 진퇴하였다. 사람됨이 장건하고 키가 보통 사람의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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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 송광국 등이 전 감사 정경세가 임진란 때 어미를 감싸 막다가 화살을 맞았음을 상소하다.
상주의 진사 송광국(宋光國) 등이 상소하기를,
“…… 경세(經世)는 임진란 초기에 산골짜기로 도망하여 숨었다가 6월 9일에 아비에 대한 상복을 벗었습니다. 그 다음날 왜적의 습격을 받았는데, 왜적이 그의 어미를 해치려고 하자, 경세가 자기 몸으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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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인재 ․ 식량 ․ 군사 등 급선무를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성교를 받아 본즉, 종이에 가득 적혀 있는 말씀이 정녕하시니 신들은 감격하여 눈물만 흘릴 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신들이 비록 용렬하나 국가가 이와 같이 어려운 때를 당하여 어찌 마음을 다하여 보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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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외가 군량 확보, 왕의 와신상담을 요구하는 자문을 보내 오다.
유원외(劉員外)가 이자하기를,
“보내온 왕의 자문을 보니, 오로지 우리 황국에 충성하고 그대의 선왕에게 효도하여 기업을 보전하려는 뜻이 마치 꺼진 불을 다시 일으키고 마른 나무에 새싹이 돋게 하려는 듯하였습니다. 몸을 돌보지 않고 온갖 고난을 무릅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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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중국에서 가져 온 군량을 운반할 대책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대병이 양남에 유주해야 할 형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군량을 조치한다 하더라도 탕패된 뒤라서 곡식을 모아 군량을 대주기가 어렵습니다. 의주(義州)에 있는 당량(唐糧) 외에 산동에서 계속 운송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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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일에 대해 2품 이상에게 수의하다.
동궁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일에 대해 2품 이상에게 수의하였다. 신 유성룡(柳成龍)이 의논드리기를,
“오늘날의 사세는 서울을 선무하여 안집시켜 근본을 튼튼하게 만들고 동남 지방을 경리하여 적환을 막아내야 합니다. 거가가 겨우 환도하여 근본이 아직 튼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