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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승2021한일관계사연구이 글은 위당 정인보가 『조선고전해제』, 『양명학연론』 등에서 강조한 실심, 본심, 감통에 대한 논의를 중심 주제로 삼아,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정인보의 본심감통론이 지닌 시대적 의미를 탐색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제강점기에 다카하시 도루(高橋亨)로 대표되는 일제 관학은 조선 유학이 고착성, 종속성, 정체성 등을 지닌다고 보고 이를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치부하였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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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연2020陽明學풍속화란 선사시대 벽화에서 시작되어 祈願의 의미로부터 일상적인 삶의 모습, 그리고 시대상과 인물의 성격 및 계층 간의 모습 등을 보여주며 당시의 다양한 생활상들을 기록하며 발전해온 그림이다. 따라서 ‘풍속화’는 기록물적인 의미에서 당시의 생활상을 확인해볼 수 있는 역사적 가치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풍속화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 것’의 독창적이고 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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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2017儒學硏究이 논문은 동아시아 양명학연구의 과제를 화두로 현재 시점에서 양명학연구를 성찰해 보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이다. 디테일보다도 거시적 안목에서 양명학연구의 새 지평을 성찰해보는데 목적이 있다. 이 논문에서 논의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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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2017동아시아 문화연구이 글에서는 나카에 쵸민의 『민약역해』와 량치차오의 「루소학안」을 양명학적 개념들을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두 사람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에 나름의 의의를 두고자 한다. 두 사람은 25년의 나이 차이가 있고 국적과 더불어 그들이 처한 상황이 달랐지만, 둘 다 어릴 적에 유학을 배운 후에 점차 서구사상에 경도되었다는 점, 그리고 자유와 민권이 생소한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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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삼2016인문사회 21이 연구는 신채호의 ‘아(我)’를 근대적 개인 주체 개념으로 보거나 그의 민족 개념을 서구적 민족주의의 그것으로 인식(번역)하는 기존의 관점들에 대해서 재이해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신채호는 ‘아’의 개념을 소아와 대아로 구별하고, 소아를 신체적이고 물질적인 존재로, 대아는 영혼적이자 정신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개인의 사회적 존재와 윤리적 실천에 입각해서, 소와 대, 체와 혼으로 구분하는 방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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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호2013儒學硏究최근 국내에서는 작년에 있었던 대선(大選)의 관권개입의 부정선거 시비로,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재정위기, 일본의 재무장과 미일의 공동방위(집단자위권) 문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등이 이슈가 되고 있다. 전쟁과 부국강병 정책은 서양의 진화론적 적자생존의 논의와 가깝다. 평화와 상생조화의 생명사상과 자연환경에 대한 담론들은 유·불·도교 등 동양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왕양명의 만물일체의 생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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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숙2012Under the Japanese Ruling Era of our Physical Environment, the only thing left to us was Eul(spirit) ― our national(racial) spirit. At that t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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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2012陽明學이 논문은 조선후기 주로 17,18세기에 나타난 ‘진가(眞假)’ 담론을 주체와 도덕의 관점에서 조명해 본 것이다. ‘진가론’은 주체와 인식 대상의 진위(眞僞)를 문제 삼음으로써, 주체의 진정성에 대한 반성을 환기 시키고 주체성에 대한 자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진가담론의 유행 속에서, 성리학적 체제와 사상의 기본 이념인 도덕과 선악이 해체되거나 강화되는 현상이 관찰된다. 진가론(眞假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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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준2011陽明學양명학이 이 땅에 전해 온지 5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한국 양명학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역사적 흐름을 따라 일정하게 사회에 기여하여 왔다. 긴 역사 속에서 兵難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 하기도 하였고, 새로운 종교로서의 천주교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하기도 하였으며, 서세동점의 국난의 위기에는 수구 또는 개화의 모습으로 이를 극복하려 하였고, 일제 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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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2010다산학이 논문은 일제 강점기의 주요 신문과 ‘잡지’에 게재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하 ‘다산’ 혹은 ‘정다산’) 관련 기사 및 논고를 토대로 당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재발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강점기 ‘정다산’의 연구와 ‘언론 매체’가 본격적으로 만나는 계기는 바로 1930년대에 일어나는 ‘민족주의적 한국학’인 ‘조선학’ 때문이다. 그 핵심 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