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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후의 진달에 따라 임진왜란 때에 순절한 정문부와 이붕수의 후손을 녹용케 하다.
옥당의 관원을 소대하였다. 명하여 임진왜란에 순절한 사람 북평사 정문부(鄭文孚)와 경성 사람 이붕수(李朋壽)의 후손을 녹용케 하였으니, 민진후(閔鎭厚)가 진달한 바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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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이 왜역 한천석 등의 배가 침몰한지 7일만에 동래부에 보고하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이보다 먼저 왜역 한천석(韓天錫) 등의 배가 침몰된 후 7일 만에 왜인이 동래부에 보고하니, 부사 박태항(朴泰恒)이 그들이 늦게 보고한 것에 노여워하고, 또 시체와 기물을 건져 낸 것이 없다고 하여 혹시 속임이 있는가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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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수사 이상집이 동래 왜관의 훈도와 별차들의 논죄를 청하다.
왜인이 초량촌(草梁村)에서 옮겨간 후 여염에 왕래할 수 없게 되자, 아침에 저자가 설 때마다 우리나라 남녀들이 섞여 가면 남자들이 가진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팔리지 않고, 여인들이 가진 것은 비록 나쁜 것이라 하더라도 꼭 팔리기 때문에, 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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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방제조 민진후가 관수왜의 공봉을 허락하기를 청하다.
약방에서 입진하였다. 제조 민진후(閔鎭厚)가 말하기를,
“동래부사가 장계하기를, ‘관수왜가 공봉을 철폐한 후로부터 밤낮으로 눈물을 흘린다.’ 고 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한결같이 공봉을 철폐하면, 또한 개과 자신할 도리가 없으며, 왜인의 들어갈 기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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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대차왜에게 저군과 집정에게 예단을 감제한 이유에 대해 힐문하다.
대신과 비국의 제신을 인견하였다. 일전에 대마도 대차왜가 나왔으므로, 동래부에서 그들의 저군과 집정에게 예단을 감제하기를 청한 연유를 힐문하였더니, 대차왜가 말하기를,
“예조참판이 글과 예물을 강호 집정에게 보낸 것은 당초의 약조가 아니고, 귀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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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천대의 도서를 특별히 허락해 주다.
대신과 여러 신하들을 인견하여 삼복을 추후로 거행했다. 대개 철원의 조카를 죽인 죄인 김환이(金還伊)의 삼복을 이때까지 미처 재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야 비로소 추후로 시행한 것인데, 임금이 순문한 다음 율대로 하도록 명하였다.
영의정 이유(李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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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주가 품질이 좋은 인삼을 얻고자 청하였으나 방색하도록 하다.
대신 및 비국의 유사당상을 인견하였다. 영의정 서종태(徐宗泰)가 말하기를,
“연해 등지에서 입은 재해가 더욱 심하고, 제주 지방이 특히 심하니, 마땅히 진휼하는 은전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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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 민진후 등이 유구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돌려보내 주었으니 사례해야 한다고 아뢰다.
약방에서 입진하였다. 진후를 마치자, 도제조 김창집(金昌集)이 말하기를,
“어제 내리신 덕음은 뜻이 간절합니다. 고요히 조리하시는 중에 백성의 일을 이토록 염려하시니, 모든 도를 안찰하는 신하와 수령·변장들이 어찌 두려운 마음으로 봉행하지 않겠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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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왜가 인삼을 무역하기를 요구하며 3년동안 머무르자 서계를 보내고 인삼도 개색하여 보내다.
…… 조태채(趙泰采)가 또 아뢰기를,
“동래부사 조영복(趙榮福)이 정장하기를, ‘인삼을 무역하기를 요구하는 차왜가 서계에 대해 허락하는 회답이 없다고 하면서 가지 않고 왜관에 머물러 있습니다. 비국에서 회답한 관문에 따라 훈도들로 하여금 엄하게 책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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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절목에 역관에 관한 절목을 강정한 것을 문제삼다.
약방에서 입진하였다. 제조 민진후(閔鎭厚)가 아뢰기를,
“통신사를 보낼 때 역관을 보내는 데 대한 절목을 강정하였으니 옛부터 그런 전례가 없습니다. 지난번 차왜가 구전하여 우리나라에서 먼저 역관을 보낼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지난번 묘당에서 그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