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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화관에 거둥하여 왜인 요삼보라를 인견하다.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였다. 어가가 돈의문 안에 이르러 공조판서 윤사윤(尹士昀)의 집에 거둥하여, 선온(宣醞) 50병, 건장(乾獐)·건저(乾猪) 각각 5구씩을 내려 주고, 풍악을 내려 주었다. 한참 있다가 가마를 움직였는데, 윤사분(尹士昐)·윤사흔(尹士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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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관찰사가 울산에 있는 수영을 다대포로 옮기기를 청하다.
경상도관찰사 김자정(金自貞)이 아뢰기를,
“좌도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가 모두 울산(蔚山) 땅에 있어서 백성의 폐단이 매우 큽니다. 청컨대 영변의 예에 의하여 울산을 도호부로 올려서 부사와 판관을 두되, 병마절도사에게 부사를 겸임하게 하고, 또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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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의 왜인무역에 대해 영돈녕 이상 등의 신하에게 논의케 하다.
호조에서 아뢴 경상도 성주 화원현(花園縣)에서 상인들의 물화를 받았다가 삼포(三浦) 왜인들의 물건을 수매하는 것에 관해 제급한 절목을 영돈녕 이상 및 일찍이 그 도의 감사를 지낸 사람들에게 의논하도록 명하였다. 정창손(鄭昌孫)․윤필상(尹弼商)․김겸광(金謙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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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순찰사 홍응이 여러 도 내 여러 포의 보에 대해 서계를 올리다.
사도순찰사 홍응(洪應)이 서계하기를,
“제도의 제포(諸浦)의 보를 설치한 곳 가운데에서 전라도 장흥(長興) 회령포(會寧浦)의 보를 설치한 곳은 좌지(坐地)가 남향인데, 포백척(布帛尺)시축(尸祝)신주(神主)와 제문(祭文).으로 재면 둘레가 1,990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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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응이 전라도 ․ 경상도 백성의 신소에 대해 서계를 올리다.
홍응(洪應)이 또 전라도․경상도 백성의 신소(申訴)를 채택하여 서계하기를,
“1. 전라도 보성군(寶城郡) 백성의 장고(狀告)에 이르기를, ‘이 고을에는 옛 조양성(兆陽城)이 있는데, 지금은 무너진 데가 있기도 하나, 대개는 완전하고 견고합니다. 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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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을 옮겨 배설하는 일을 의논하다.
사량(蛇梁)을 옮겨 배설하는 일을 의논하였다. 한명회(韓明澮)․윤필상(尹弼商)․윤호(尹壕)는 의논하기를,
“사량진을 해도에 둔 것은 그 생각이 매우 원대하니, 번상하는 수군의 출입이 어렵다고 하여 쉽사리 육지에 옮겨 설치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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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포에 성 쌓는 일을 계속하도록 감사에게 유시하다.
경상도관찰사 이세좌(李世佐)가 치계하기를,
“대마도 왜인 수계구라(愁戒仇羅)가 말하기를, ‘선위사(宣慰使)가 본도에서 예물을 줄 때에 예수와 서로 말하는 절차로 인하여 옥신각신하며 강변하였는데, 도주가 마음에 불평을 품었고, 도주의 아들 정무(貞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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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다무의 처리를 의논하다.
병조판서 어세겸(魚世謙) 등이 와서 아뢰기를,
“영안도관찰사 성준(成俊)과 남도 절도사 여자신(呂自新) 등이 김단다무(金丹多茂)를 내지(內地)로 옮겨 살게 하는 것은 적당하지 못하다고 하고, 그대로 혜산(惠山)에 머물러 두기를 청하였으니, 조정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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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리가 거주하는 곳에 토성을 쌓는 일에 관해 신하들과 논의하다.
일찍이 영안도(永安道)의 관찰사와 절도사를 지낸 재상을 모아 오진(五鎭)의 장성 밖의 알타리(斡朶里)의 거주하는 곳에 토성을 쌓아 구적을 방비하게 하는 일과 여연(閭延)․무창(茂昌)에 새로운 진을 설치하는 일과 온성진(穩城鎭)․미전진(美錢鎭)에 사민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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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부우윤 성숙이 고성에 진군을 설치할 것 등을 청하다.
이보다 앞서 한성부우윤 성숙(成俶)이 아뢰기를,
“청컨대 진군을 고성(固城)에 설치하고 만호를 가배량(加背梁)에 두게 하소서.”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한성부(漢城府)에 의논하게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