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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에서 밀양 군사 100명이 익사한 사건으로 부사의 파직을 청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가덕도진(加德島鎭)을 설치한 이래 왜적이 도둑질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실로 남방의 중진인데 출입번하는 군사들이 편한 길을 좋아하여 거의 다 명지도(鳴旨島)를 경유하다가 바람을 만나 많이 익사합니다. 지난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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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가 법전이나 고사에 왜인의 봇짐 뒤지는 일은 없다고 아뢰다.
예조가 또 아뢰기를,
“조종 때의 법전이나 고사에 모두 객인의 험포(驗包)에 관한 말이 없습니다. 임자년에 이현(李俔)의 한때의 계청에 따라 병조가 중국의 예에 따라서 험포하기를 계청하였으나, 그 때의 회계에도 새로운 예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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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 김규가 왜인의 험포란 무게를 다는 일이었다고 변명하여 물의가 나다.
어제 사간 김규(金戣)가 피혐하여 아뢰기를,
“신이 지난 임신년 6월 사간이었을 때에 예조가 병조에 보낸 공문을 보니, 예조의 낭관은 왜관에 가지 않고 다만 병조의 낭청이 칭량하기를 청하였으므로, 예조·병조의 낭청을 시켜 왜관에 같이 가서 험포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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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 체찰사 이원익 등을 인견하고 격려한 뒤, 광해군을 세자로 정하다.
상이 선정전에 나와 징병체찰사 이원익(李元翼)과 최흥원(崔興源), 우부승지 신잡(申磼), 주서(注書) 조존세(趙存世), 가주서 김의원(金義元), 봉교 이광정(李光庭), 검열 김선여(金善餘) 등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원익에게 이르기를,
“경이 전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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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가 이산해의 정죄를 아뢰고, 이현이 전란을 맞아 자책하라는 상소를 올리다.
양사가 합계하여 급제 이산해(李山海)를 율에 의해 정죄할 것을 아뢰었으나 상이 윤허하지 않았다. 한음도정(漢陰都正) 이현(李俔)이 아뢰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어가가 궁궐을 떠나던 날 신은 순릉향사(順陵香使)로서 대궐문까지 달려갔다가 우연히 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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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가 먼길을 와서 상소 올리는 사람 중에 재주가 있으면 등용하라고 청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아뢰기를,
“천리 먼 길을 친히 와서 소를 올리는 성의는 아름답습니다. 그 말이 쓸 만하면 채용해야 하고 시행할 수 없으면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 인재를 해조로 하여금 재주에 따라 직을 제수하는 일은 이미 계달하였습니다.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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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원이 공론의 진작 등 전란을 회복하는 방법을 아뢰다.
사간원이 아뢰기를,
“고인이 말하기를 ‘성문은 닫고 언로는 열어야 한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천하에 일이 있으면 필부의 말이라도 중하기가 태산과 같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국가가 위란할 때를 당하여서는 언로를 여는 것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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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가 의주에서 돌아오자 인견하고 송경략의 인품, 문답 내용 등을 듣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의주에서 돌아왔는데 상이 인견하고서 송경략(宋經略)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물으니, 아뢰기를,
“그의 형모를 보니 그다지 장대하지는 않으나 다분히 영기는 있었습니다.”
하였다. 이어 계사를 써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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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최흥원 등을 보내 선릉과 정릉을 봉심하게 하다.
영의정 최흥원(崔興源), 예조참의 이관(李灌), 오산군(烏山君) 이현(李鉉) 등을 보내어 선릉과 정릉을 봉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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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독을 변무하는 일로 한포정에게 자문을 보내다.
우리나라에서 이제독(李提督)을 변무하는 일로 한포정(韓布政)에게 자문을 보내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왜적의 침략을 당해 3도가 함락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황제께서 군사를 일으켜 구원해 주었습니다. 이제독은 천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