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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21한일관계사연구이 글은 19세기 후반 조선과 일본 사이의 무역 통계에 관한 것이다. 수출입 품목의 종류와 수량, 가격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무역 통계는 해당 시기 무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874년과 1880년의 무역 통계를 비교한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확인되었다. 첫째, 1874년과 1880년 무역 통계에서는 그 이전 시기 무역의 특징이었던 公貿易이라든가 私貿易 등의 구분을 발견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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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8한일관계사연구조선시대 대일(對日) 외교와 무역의 실무를 맡은 사람들은 왜학역관(倭學譯官) 또는 왜어역관(倭語譯官)으로 불린 조선 정부의 일본어 통역관들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통역 역할을 넘어 외교와 통상의 전문가로서 활약하였다. 이 글에서는 왜관의 일본인이 작성한 『관수일기(館守日記)』와 그것의 목록집이라 할 수 있는 『분류사고(分類事考)』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기간은 1854년부터 1863년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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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8열상고전연구1687년 9월부터 1870년 윤 10월까지 왜관(倭館)의 일본인 관리자인 관수(館守)가 작성한 일지(日誌)를 가리켜 『관수일기』라 부른다. 이 글에서는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소장된『관수일기』의 개요와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관수일기』는 조선과 일본의 외교와 무역이 이루어지는 현장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따라서 『관수일기』를 활용한다면 조선 후기 한일관계사의 다양한 측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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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6한일관계사연구조선 정부는 공무역(公貿易)에서 일본이 가져온 물품에 대하여 15세기 초부터 면포 즉 공목(公木)으로 결제해 주기 시작했다. 17세기 중엽~19세기 중엽에는 공목의 일부를 쌀로 바꾸어 지급했는데 그것을 공작미(公作米)라 불렀다. 왜관을 통해 대마도로 건너간 조선의 공목과 공작미는 일본 대마도 경제의 기초를 이루었다. 이 글에서는 1860년대 공목과 공작미 문제를 분석하였다. 1862년에는 조선의 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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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2014한일관계사연구이 논문은 거제 주민의 일본 난파선(難破船)구조(救助)에 관한 것이다. 분석에 사용된 자료는 경상도(慶尙道) 거제부(巨濟府) 구조라리[舊助羅里;項里]고문서(古文書)와 일본 자료인 왜관(倭館)의 관수매일기(館守每日記), 외무성기록(外務省記錄) 등이다. 이를 통해서 세 가지 결론을 얻었다. 첫째, 구조라리 고문서에 나타나는 대마도(對馬島) 선박의 해난사고(海難事故)를 조선에 표착한 일본(日本) 선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