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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등지의 적이 군사를 합쳐 진주를 포위하다.
부산 등지에 주둔했던 적이 군사를 합쳐 대대적으로 진주를 포위하였다. 당초에 적이 유숭인(柳崇仁)의 군사를 패배시키고 여러 고을을 분탕질한 뒤 진주로 향하려 하였다. 이에 김성일(金誠一)이 호남에 구원을 청하자 의병장 최경회(崔慶會)·임계영(任啓英)이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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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이 의병장 곽재우․이달 등을 보내어 진주를 구원하도록 하다.
김성일(金誠一)이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이달(李達) 등을 보내어 진주를 구원하게 하고, 사잇길로 군기를 수송하게 하였는데, 목사 김시민(金時敏)이 적병을 크게 격파하여 진주가 포위에서 풀렸다. 당초 왜장이 군사 수만 명을 모두 동원하여 진주성을 포위하였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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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순찰사 김성일의 졸기.
경상좌도 순찰사 김성일(金誠一)이 죽었다.
당시 혹심한 병란에 백성은 굶주리고 여역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이에 성일이 직접 나아가 진구하면서 밤낮으로 수고하다가 여역에 전염되어 죽었다. 일로의 군사와 백성들이 마치 친척의 상을 당한 것처럼 슬퍼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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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이 허성이 일찍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김성일에게 추하게 여김을 당하였다고 논하다.
〈지돈녕부사 허성(許筬)이 상소하기를,
……【사신은 논한다. 허성은 허엽(許曄)의 아들이다. 엽은 유자로 세상에 이름이 났었다. 비록 식견이 우활하고 막혔으나 만년까지 지킨 절의는 법으로 삼을 만하고 도덕과 행의는【평생토록 다져온 학문은】 사림에 칭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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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가 중조에서 준 난삼 등이 왜란 때 불에 탔으나 안동에 있는 것은 탈이 없다고 아뢰다.
이보다 앞서 승지 이익운(李益運)이 영남에 사명을 받든 적이 있었는데, 명을 받들고 고가의 문적을 찾아 바치면서 상에게 아뢰기를, ……
“…… 중조의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 및 동쪽으로 정벌하러 온 여러 사람들이 문충공 유성룡(柳成龍)과 왕래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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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의 계사로 임진왜란 때에 진주를 지킨 증참판 이노를 정경에 증직시키라고 명하다.
이조의 계사로 인하여 증 참판 이노(李魯)와 고 부제학 이유홍(李惟弘)을 아울러 정경(正卿)에 증직하고, 고 징사 권상길(權尙吉)에게도 증직시키라고 명하였다. 이노는 임진왜란 때에 김성일(金誠一)과 함께 진주를 지키던 사람이고, 이유홍은 선조 말년에 상소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