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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신 평조신 ․ 현소 등이 서울에 오다.
왜사 평조신(平調信)·현소(玄蘇) 등이 서울에 왔다. 상이 비변사의 의논에 따라 황윤길(黃允吉)·김성일(金誠一) 등으로 하여금 사적으로 술과 음식을 가지고 가 위로하면서 왜국의 사정을 조용히 묻고 상황을 살펴보게 하였다. 그러자 현소가 성일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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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축을 우참찬에 제수하다.
이축(李軸)의 품질을 올려 형조판서로 삼았다가 얼마 후 우참찬에 옮겨 제수하였다. 이정암(李廷馣)을 대사간으로 삼고, 황진(黃進)을 동복현감(同福縣監)으로 삼았다. 황진은 무인으로 문자는 알지 못했으나 용략이 있었다. 그는 김성일(金誠一)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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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을 경상우병사로 삼다.
김성일(金誠一)을 경상우병사로 삼았다. 당시 조대곤(曺大坤)이 노병으로 체직되자 특지로 김성일을 대신하게 한 것이다. 대체로 성일은 항상 말하기를 ‘왜노는 틀림없이 침략해 오지 않을 것이며 온다 해도 걱정할 것이 못된다.’ 고 하였으며, 또 차자를 올려 영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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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중추부사 이덕형을 왜군에 사신으로 보내다.
동지중추부사 이덕형(李德馨)을 왜군에 사신으로 보냈다. 상주의 패전에서 왜역관 경응순(景應舜)이 진중에 있다가 잡혔는데, 평행장(平行長)이 수길(秀吉)의 서계와 예조에 보내는 공문을 응순에게 주어 내보내면서 말하기를,
“동래에 있을 때에 울산군수(蔚山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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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 우병사 김성일을 초유사로 삼다.
경상우병사 김성일(金誠一)을 잡아다 국문하도록 명하였다가 미처 도착하기 전에 석방시켜 도로 본도의 초유사(招諭使)로 삼고, 함안 군수 유숭인(柳崇仁)을 대신 병사로 삼았다. 이에 앞서 상은 전에 성일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와 적이 틀림없이 침략해 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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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에서 의병이 일어나다.
제도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당시 삼도의 수신이 모두 인심을 잃은 데다가 변란이 일어난 뒤에 군사와 식량을 징발하자 사람들이 모두 밉게 보아 적을 만나기만 하면 모두 패하여 달아났다. 그러다가 도내의 거족과 명인이 유생 등과 함께 조정의 명을 받들어 창의하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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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사 김성일이 장계를 올려 곽재우의 공과를 논하다.
초토사 김성일(金誠一)이 장계를 올려 곽재우(郭再祐)의 공과를 논하고 너그럽게 용서하여 적을 토벌하게 할 것을 청하자, 그대로 따랐다. 재우는 본래 강개한 선비로서 맨손으로 의병을 일으킨 뒤 오로지 의기로 많은 군사들을 고무시켰다. 그런데 처음에 감사 김수(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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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유생 양산숙을 공조 좌랑에 임명하고 호남 ․ 영남에 유시하는 교서 2통을 내리다.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등이 유생 곽현(郭玄)·양산숙(梁山璹)을 보내어 바닷길을 따라 관서에 들어가 행조에 일을 아뢰었다. 양산숙이 또 상소하여 계책을 올리니, 상이 자주 인견하여 위유하며 공조좌랑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이호민(李好閔)으로 하여금 교서 2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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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의 입구에 웅거하다.
이때 이순신(李舜臣)은 수군을 거느리고 서해의 입구에 웅거하였으며, 김성일(金誠一) 등은 진주의 관요를 지키고 있었다. 적이 금산의 길을 경유하여 호남에 침입했으나 여러 번 좌절당하였으므로 도로 종래의 길로 퇴각하여 돌아가니 호서 또한 함락되는 것을 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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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좌도 의병장 유종개가 적에 패하여 전사하다.
경상좌도 의병장 유종개(柳宗介)가 적을 만나 패하여 전사하였다.
이에 앞서 경상좌도의 산협(山峽)과 해빈의 10여 고을은 적로와의 거리가 조금 멀어서 사족(士族)들은 험한 지역을 의지하여 병란을 피하고 여리에서는 의구하여 모두 ‘만약 군사를 모으면 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