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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접반사 김명원이 아뢰다.
군문접반사 김명원(金命元)이【젊었을 때 유장(儒将)이란 이름을 훔쳤고 임진년 왜구가 침입했을 때 기용되어 원수(元帥)가 되었으나 패하기만 하고 공은 없으므로 사람들이 많이들 비웃었다.】아뢰기를,
“어제 군문이 경리(經理), 어사(御史), 동낭중(董郎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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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접반사 김명원이 성지 세통을 등서하여 입계하다.
군문접반사 김명원(金命元)이 아뢰기를,
“중군이 약간 회색을 띠면서 말하기를 ‘정주사(丁主事)가 의주(義州)에 도착해서도 인준을 받지 못하였는데 구경(九卿)의 회의에서 좋은 뜻으로 결론이 났으며, 소대형(蕭大亨)이 올린 제본에 대한 성지 또한 매우 좋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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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접반사 김명원이 아뢰다.
군문접반사 김명원(金命元)이 아뢰기를,
“감과(勘科) 서관란(徐觀瀾)의 상본을 군문의 연방에게서 입수하였으므로 아울러 입계합니다.”
하니, 상이 알았다고 하였다. 상본의 대략은 다음과 같았다.
“감과 서(徐)는 충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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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문 접반사 김명원이 치계하다.
6435. 군문 접반사 김명원이 치계하다.
군문 접반사 김명원(金命元)이 치계하였다.
“양과관(楊科官)이 통군정(統軍亭)에서 군문(軍門)·경리(經理)와 모여 전공을 사감하고 고시를 내었는데 ‘철수할 여러 장수들은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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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원 ․ 한응인 ․ 이헌국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6524. 김명원·한응인·이헌국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명원(金命元)을【스스로 호방함을 자부하여 조금도 유자의 기상이 없었다.】행병조판서로, 한응인(韓應寅)을【젊어서 재주가 있었으나 본래 덕망이 없었는데, 급기야 높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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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들과 중국군의 주둔을 요청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와 일본과의 강화 문제 등을 논의하다.
상이 시어소(時御所)의 별전에 나아가 영의정 이산해(李山海), 완성부원군 이헌국(李憲国), 경림군 김명원(金命元), 지사(知事) 신점(申點), 예조판서 심희수(沈喜寿), 병조판서 홍여순(洪汝諄), 호조판서 신잡(申磼), 이조판서 임국로(任国老), 행호군(行護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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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 부원군 윤두수가 중국군 천 명의 서울 주둔 문제에 대해 아뢰다.
6766. 해원 부원군 윤두수가 중국군 천 명의 서울 주둔 문제에 대해 아뢰다.
해원부원군 윤두수(尹斗寿), 행판중추부사 이덕형(李徳馨), 우의정 김명원(金命元)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비망기의 전교 내용을 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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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천명의 주둔 요청 문제에 대해 대신들이 논의하다.
여러 대신과 비변사 당상이 헌의 단자를 봉입하였다. 영의정 이항복(李恒福)과 지사(知事) 황진(黃璡)이 의논드리기를,
“1천의 병력을 청하는 것은 중국의 웃음거리만 더할 뿐 일은 마침내 성사되기가 어려우니 전과 같이 3천의 병력을 머물게 하고 아울러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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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 청병 문제에 대해 대신들과 논의하다.
6769. 중국군 청병 문제에 대해 대신들과 논의하다.
상이 편전에 나아갔는데, 해원부원군 윤두수(尹斗寿), 영돈녕부사 이원익(李元翼), 영의정 이항복(李恒福), 좌의정 이헌국(李憲国), 우의정 김명원(金命元), 이조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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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대신들과 국방에 대해 상의하다.
상이 별전에 나아가 대신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내가 병중이었고 날씨가 추워 오랫동안 서로 보지 못했었다. 지금 다른 일은 말할 것이 없고 춘신이 이미 가까워 차츰 바람이 온화해지는데 남쪽을 방비하는 등의 일은 어떻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