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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은사 홍담이 왜구에 관해 장계하다.
사은사(謝恩使) 홍담(洪曇)의 장계에,
“…… 또 ‘남방의 소주(蘇州)·송강(松江) 소속인 상해(上海)·가정(嘉定) 등의 고을과 강동(江東) 지방에는 왜놈들의 도적질이 해마다 그치지 않아, 사람들을 죽이고 가옥을 불태우고 공장(工匠)들을 잡아가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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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군 한응인이 강동에 도착하여 백성을 불러 모으고 무기 및 병사의 보강을 청하다.
청평군 한응인(韓應寅)이 창군 130명을 거느리고서 상류의 여러 여울을 지키기 위하여 강동에 도착하니 현감 윤시침(尹時忱)이 다만 몇 사람의 관속과 함께 관아에 남아 있을 뿐, 온 경내가 다 도망해 숨었다. 응인이 시침으로 하여금 도망한 백성들을 불러 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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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가 내강을 방어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치계 하였다.
“당일 유시에 강 상류의 조방장(助防將)인 용천군수 허숙(許淑)의 치보에 ‘11일 진시에 왜적이 석회탄(石灰灘)에 이르자 여울을 지키던 군졸들이 모두 흩어졌으므로 형세가 외로워 대적하기 어렵기에 내강으로 퇴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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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삼현에 있는 훈련정 이사명의 당상 승직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현에서 지금 의병을 일으켜 진취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매우 기쁘고 다행스럽습니다. 훈련정(訓鍊正) 이사명(李思命)이 마침 그곳에 왔기 때문에 여럿이 추대하여 조방장으로 삼았다 합니다. 이 사람은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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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적전에서 도망친 김억추 ․ 허숙을 조치하라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전쟁이 일어난 이후로 정사에 은대가 많았기 때문에 기율이 엄하지 않고 군정이 이완되었으니, 제때에 기강을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강동(江東)과 강탄(江灘)이 무너진 것은 오로지 김억추(金億秋) · 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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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의 만행과 전투 상황을 적어 요동에 자문을 보내며 구원병을 청하다.
상이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事使)에 자문을 보내 구원병을 청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9월 7일, 경기관찰사 심대(沈岱)가 치계하기를, ‘왜적이 공희왕(恭僖王)공희왕(恭僖王)중종(中宗)의 시호.의 능묘를 파헤쳤고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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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지 유근이 동궁이 있는 성천에 다녀와 아뢰다.
도승지 유근(柳根)이 아뢰었다.
“신이 이달 3일 성천(成川)의 온정(溫井)에 도착하였고 4일 이른 아침에 나아가서 예조의 의주(儀註)대로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예를 끝마치고 동궁이 다례를 거행하려는데 신이 분예조(分禮曹)가 의논하여 정한 의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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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가 중국군의 출동이 늦어지자 왜적에 대응할 방책을 논하며 차자를 올리다.
사헌부집의 이호민(李好閔), 장령 이시언(李時彦), 지평 유몽인(柳夢寅)이 차자를 올리기를,
“군사가 지치면 반드시 패하고 적이 오래 머물면 반드시 익숙하게 되는 법입니다. 오늘날 적을 섬멸하는 일은 일각이 급한데도 앉아서 천장(天將)과의 약속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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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성급한 군사 행동의 자제, 이천 ․ 이빈 ․ 이일 등 장수의 활동을 보고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순안(順安)의 군사는 이미 숫자를 더했고, 겨울도 이미 반이 지났는데 가만히 앉아서 중국 군사만 기다리고 있으니 기회를 잃은 것이 얼마인지 모릅니다. 심장(沈將)이 비록 도착하더라도 강화를 주장할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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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정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이빈과 이일의 갈등, 중국군의 출병 등을 논의하다.
우의정 윤두수(尹斗壽),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우찬성 최황(崔滉),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행 이조판서 구사맹(具思孟), 서천군(西川君) 정곤수(鄭崐壽), 형조참판 이희득(李希得), 동지중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