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전투 후에 양 총병이 왜적에 대한 정보 부족을 질책했다고 심희수가 보고하다.
이에 앞서 부총병 조승훈(祖承訓), 유격장군 사유(史儒)·왕수관(王守官) 등이 평양에 진격하여 17일 동틀 녘에 평양으로 돌격, 성에 포를 쏘고 관을 부수면서 길을 나누어 쳐들어가 몸을 돌보지 않고 전투를 독려하였다. 사유가 사졸보다 앞장서서 천총(千摠) ...
-
대신 등을 인견하고 중국군의 일정, 각도 장수의 파견, 군량 조달 등을 논의하다.
상이 동헌(東軒)에 나아가 대신과【윤두수(尹斗壽)】 비변사 당상을【홍성민(洪聖民)․한응인(韓應寅)․정창연(鄭昌衍)․이항복(李恒福)․이성중(李誠中)․이산보(李山甫)․구사맹(具思孟)․이희득(李希得)】인견하였는데, 우승지 홍진(洪進), 사간 이유징(李幼澄), 장...
-
도승지 유근이 동궁이 있는 성천에 다녀와 아뢰다.
도승지 유근(柳根)이 아뢰었다.
“신이 이달 3일 성천(成川)의 온정(溫井)에 도착하였고 4일 이른 아침에 나아가서 예조의 의주(儀註)대로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예를 끝마치고 동궁이 다례를 거행하려는데 신이 분예조(分禮曹)가 의논하여 정한 의주를 ...
-
급제 이홍로가 전란에 즈음한 급선무로 군량 ․ 정령 등을 지적하여 상소하다.
급제(及第) 이홍로(李弘老)가 소를 올리기를,
“신은 참으로 죽을 곳을 알지 못하여 반년을 왜구와 한 하늘을 이고 살았습니다. 한(漢)의 대업은 한 귀퉁이에서만 편안해야 했고 정(鄭)나라의 군사는 스스로 지쳤습니다. 밤에 닭울음소리를 듣고 느낌이 있...
-
비변사가 영남의 박진을 불러 올리는 일 등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박진(朴晋)을 불러와 기성(箕城)의 적을 토벌하게 하는 일을 식견 있는 사람들은 옳다고 하는 자가 많습니다. 다만 영남을 거의 수복한 공은 실로 박진이 그렇게 한 것인데 이제 만약 불러 오면 영남 백성들이 ...
-
비변사가 정주로 옮기는 일은 경솔히 해서는 안된다고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대가가 정주(定州)로 진주하여 기회를 보아 진격하자는 뜻은 여러 신하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병졸과 시역들도 모두 앞장서기를 원하니 그 의기를 막아서는 안 되겠습니다만, 기성(箕城)을 아직도 대거 탈환하지 ...
-
윤두수가 대간이 유홍을 논박한 것은 다른 뜻이 없다며 상이 재결하라고 청하다.
윤두수(尹斗壽)가 다시 아뢰기를,
“대간이 우상을 논박한 본의는 신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찌 다른 뜻이야 있겠습니까. 반드시 체찰사를 이미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계속 재상의 자리에 있기가 어렵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직 성명께서 재처하소서.”...
-
우의정 윤두수 등을 인견하고 이빈과 이일의 갈등, 중국군의 출병 등을 논의하다.
우의정 윤두수(尹斗壽), 행 예조판서 윤근수(尹根壽), 우찬성 최황(崔滉),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병조판서 이항복(李恒福), 호조판서 이성중(李誠中), 행 이조판서 구사맹(具思孟), 서천군(西川君) 정곤수(鄭崐壽), 형조참판 이희득(李希得), 동지중추...
-
윤근수가 왜적이 이제독에게 공물을 바치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아뢰다.
윤근수(尹根壽)가 와서 아뢰었다.
“들으니 8일에 이제독(李提督)이 기성(箕城)에 진격하자 왜장이 장대선(張大膳)을 시켜서 청하기를 ‘명나라 군사를 잠시 물러나게 하면 복건에서 표문을 받들고 공물을 바치겠다.’ 고 하였는데, 제독이 대답하기를 ‘너희...
-
용만관에서 유원외와 원주사를 접견하고 평양 수복의 공을 치사하다.
상이 용만관(龍灣館)에 나아가 유원외(劉員外)와 원주사(袁主事)를 접견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황상의 위령을 힘입어 이미 기성(箕城)의 적을 섬멸하였으니 얼마 후에는 옛 강토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례하는 절을 올릴까 합니다.”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