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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유경의 가인 심가왕이 평양에서 돌아와 요동으로 가다.
심유경(沈惟敬)의 가인 심가왕(沈加旺)이 평양으로부터 돌아와 강을 건너 요동으로 향하였다. 처음에 심가왕이 평양에 도착하자 왜장(倭將)이 매우 후하게 대접하여 모든 음식을 전보다 풍부하게 갖추었으나 반신반의하였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성중에 머물도록 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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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수복 전투의 전모를 기록하다.
처음에 제독 이여송(李如松)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부총병 양원(楊元)을 중협대장으로, 부총병 이여백(李如栢)을 좌익대장으로, 부총병 장세작(張世爵)을 우익대장으로 삼고, 부총병 임자강(任自强)․조승훈(祖承勳)․손수렴(孫守廉)․사대수(査大受)와참장이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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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익 등이 생포한 왜적 장수를 심문한 내용을 보고하다.
도순찰사 이원익(李元翼), 공조판서 한응인(韓應寅), 한성부 판윤 이덕형(李德馨)이 치계하기를,
“1월 11일 아침에 명나라 장수가 전일 생포한 적의 중군이라 일컫는 사람을 불러다 묻기를 ‘왜적의 정예군은 어느 곳에 있으며 함경도에 있는 적의 수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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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사망한 명군에게 제사를 지내주자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었다.
“지금 이원익(李元翼) 등의 장계를 자세히 보니 명나라 장수가 전진(戰陣)에서 죽은 군사들을 위하여 보통문(普通門) 밖에 나아가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일로 명나라 사졸들이 칼날 아래 횡사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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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가 평양에 왜적이 쌓아 놓은 토굴을 조사하고 아뢰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또 치계하였다.
“신이 행재(行在)에 있으면서 늘 왜적의 토굴은 쉽게 공격하여 함락시킬 수 없다는 기별을 들었는데 평양에 이르러서 적이 쌓은 것을 낱낱이 관찰하니 이름은 토굴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땅을 파고 만든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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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을 탈환한 것에 대해 중국 조정에 주본을 전하다.
상이 신안관(新安館)에 행행하여 궐패를 설치하고, 백관을 거느리고 재배한 다음 영하(寧夏) 평정을 하례한 표문과 평양(平壤)을 탈환한 데 대한 주본을 사신 이조판서 한준(韓準)에게 친히 전하였다.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정월 9일에 배신 제도체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