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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을 인견하고 중국군의 출정 상황, 함경도의 왜적 동향 등을 논의하다.
묘시 정각에 상이 동헌(東軒)에 나아가 대신과【윤두수(尹斗壽)】비변사 당상을【윤근수(尹根壽)․홍성민(洪聖民)․한응인(韓應寅)․이항복(李恒福)․이성중(李誠中)․이산보(李山甫)․구사맹(具思孟)․이희득(李希得)】인견하였는데, 좌부승지 신점(申點)이 입시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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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 홍성민 ․ 김면 ․ 선거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근수(尹根壽)를 대제학으로, 홍성민(洪聖民)을 겸호조판서로, 김면(金沔)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선거이(宣居怡)를 전라병마절도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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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가 경성수복 때에 도체찰사의 지휘를 받도록 장수들에게 하서하라고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지금 들으니 ‘고언백(高彦伯)과 이빈(李薲)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최전방에 있고 전라감사는 고양(高陽) 해포(醢浦)에 머물고, 충청감사 허욱(許頊)과 수사 정걸(丁傑), 건의부장(建義副將) 조대곤(曺大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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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수복후에 여러 장수가 경성으로 모인 일과 행주산성의 대첩에 대해 기록하다.
처음에 평양이 회복되자 여러 장수들이 많이 경성으로 모여들었다. 중국군이 개성부에 진주하자 우리나라 장수들은 차례로 전진시켜 함께 기각의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전라도순찰사 권율(權慄)은 그의 군사 4천명을 반으로 갈라 절도사 선거이(宣居怡)로 하여금 거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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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이 경성의 포위 상황을 아뢰며 왜적이 합세하기 전에 토벌하자고 청하다.
도체찰사 풍원부원군 유성룡(柳成龍)이 치계 하였다.
“경성에 있는 적의 무리가 12일의 행주 전투로 인하여 사망자가 매우 많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도망해 돌아온 사람들의 말이 모두 같습니다. 15일에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수군을 이끌고 곧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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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부가 충청병사 이옥과 홍주목사 이총 등의 체직을 청하다.
헌부가 아뢰기를,
“충청병사 이옥(李沃)은 재능과 지혜가 모자라 시기에 임하여 그르친 일이 많아 도내 군민이 실망하고 있으니 혹시라도 적의 침범이 있게 되면 결단코 방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홍주목사(洪州牧使) 이총(李璁)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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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가 경성을 수복하는 시기를 놓치지 말기를 청하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여러 군사들이 진을 후퇴시킨 것은 사세에 따랐거나 혹은 주장의 명령으로 인한 것이어서 멀리서 통제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다만 생각건대 한수(漢水) 이남에 흉적들의 기세가 한창 성한데 강을 사이에 둔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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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윤두수를 인견하여 양호의 방어, 농사의 권장 등을 논의하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가 장차 제독이 있는 곳에 가게 되어 상이 인견하는데, 참찬관 홍진(洪進)도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좌상이 혼자서 수고해야 되겠다. 대군이 빨리 진병하지 않으면 민심이 괴리될 뿐 아니라, 농사가 전폐되고 군량도 이어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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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와 중국군을 진격시킬 일과 왜적들의 동태에 대해 논의하다.
상이 비변사에 묻기를,
“오늘날의 일은 남은 왜적을 추격하여 섬멸하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노둔한 장수와 잔약한 병졸들은 말할 것이 없거니와 송경략(宋經略)도 부질없이 영기(令旗)만 전하고 있으며, 이제독(李提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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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에서 전라도와 충청도의 누락된 정병을 수습하고 지휘계통을 세울 것 등을 청하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겨울이 다 끝나가고 있으니 내년 봄 적을 대비할 일이 매우 긴급한데도 중외의 인정은 일체 중국군만 믿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앉아서 적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린 채 조병, 책응 등에 대한 일에 전혀 손...